마음에 내리는 비에 우산이 필요할 때
우울한 마음에 영향을 주는 뇌 회로는 진화와 관련이 깊다. 이번 장에서는 진화의 흐름을 따라 뇌를 이해하려고 한다. 뇌의 맨 안쪽에 있는 선조체에서 시작해서 바깥쪽 피질로 나오면 된다. 우울증은 기본적으로 감정 담당 변연계와 생각 담당 전전두피질 사이의 잘못된 의사소통의 결과다. 두 영역은 아주 밀접한 상호작용으로 전두-변연계fronto-limbic system이라고 부른다. 이 기능이 원활하지 못할 때 우울증에 빠진다. 전두-변연계가 감정 조절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전두-변연계와 근처 친구를 알아보려고 한다. 많은 과학 용어가 등장한다. 용어에 흥미가 없다면 ‘선조체’ 같은 단어가 나올 때 그냥 ‘아~ 어떤 뇌 영역’하고 넘어가자.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이런 글을 남겼다.
“사람은 욕망이 충족될수록 더 큰 욕망을 갖는 유일한 동물이며,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유일한 동물이다.”
뇌 과학과도 일맥상통한 말이다. 우리 뇌 안에 충동적 욕망을 부추기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진화의 역사에서 가정 먼저 등장한 선조체다. 공룡에게 물려받은 선조체는 뇌의 깊은 안쪽에 있다. 선조체는 오래된 피질하영역subcortical region으로 행동과 동작을 담당하는 회로가 모여있다. 사람은 만족하지 않은 욕망이 지속해서 쌓이면 우울해진다. 우울증에는 중독, 충동성, 피로감 등이 자주 동반된다. 선조체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나타난 나쁜 습관이다.
선조체는 배측 선조체dorsal striatum와 측좌핵nucleus accumbens으로 나뉜다. 배측 선조체는 윗부분에 위치하며 습관 회로를 통제한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습관은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다.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면 그 행동은 배측 선조체에 강하게 배선된다. 그 행동을 반복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매일 산책하기와 같은 좋은 습관을 들이면 무의식적으로 삶을 바꿀 힘이 생긴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거부당한 기분일 때 소주를 마시는 것도 배측 선조체 때문이다. 우울증일 때 도파민 분비가 감소하여 피로감을 느낀다. 신체적 습관과 사회적, 감정적 습관에도 관여한다.
충동적 행동을 책임지는 측좌핵은 선조체 아랫부분에 있다. 재미있고 즉각적인 쾌락에 관심이 많다. 변연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피로가 몰려올 때 초콜릿을 먹거나 설탕이 든 커피믹스를 찾는 행동은 측좌핵과 관련이 있다. 신나거나 흥분되는 일을 할 때 도파민이 나온다. 우울증일 때 모든 일이 재미없어지는 이유는 측좌핵에서 도파민 분비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충동적인 행동은 즐거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동기 결여가 포함된다. 장기적인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선조체는 고도로 진화한 뇌 영역과 다른 논리를 따른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타고났다. 선조체는 어떤 일을 쉽게 만들거나 더 어렵게 만든다. 당신을 골탕 먹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려는 것이다. 옷의 단추를 끼우는 일을 처음 배우는 것처럼, 매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일상을 살아내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든다. 우리의 일상에서 습관적인 반복 활동, 충동이 없다면 살기 어려워진다. 다행히 당신이 가진 특정 습관과 충동적 행동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 배측 선조체가 특정 행동을 하도록 훈련하며 살다 보니 변화가 어려울 뿐이다. 뇌 안에 있는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능력, 신경 가소성을 활용하면 변화는 가능하다.
변연계는 기억과 동기부여, 흥분과 공포 등을 담당한다. 뇌의 깊은 곳에 있으며 선조체보다 늦게 진화되었다. 변연계는 원하는 장난감을 얻지 못할 때 생떼를 쓰는 어린이와 비슷하다. 시상하부hypothalamus, 편도체amygdala, 해마hippocampus, 대상 피질cingulate cortex로 구성되어 있다. 시상하부는 호르몬을 조절해 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한다. 편도체는 공포를 비롯한 강렬한 감정에 관여한다. 해마는 맥락을 이해하고 기억을 장기간 보관하는 일에 관여한다. 대상피질은 우울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집중과 주의를 통제한다. 습관이든 의도적인 선택이든 집중하는 것에 따라 기분을 좌우한다.
한겨울에 언 몸을 따뜻한 실내로 옮겨도 몸속의 모든 것은 균형을 유지한다. 몸이 끊임없는 환경 변화 속에서도 생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생체항상성homeostasis 때문이다. 이를 유지하는 데 변연계의 중심에 있는 시상하부가 필요하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공기, 물 등이 부족하면 시상하부에 의해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여러 호르몬을 조절해 스트레스에 관여한다.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늘려 투쟁-도피 상황을 만든다. 산속에서 뱀을 만났을 때 싸울 것인지 도망갈 것인지 고민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우울증에 빠지면 늘 뱀을 만나는 상황으로 긴장을 풀기도 행복한 마음을 갖기도 어렵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좋은 방법은 시상하부를 진정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다.
편도체는 아몬드 모양으로 시상하부 근처에 있으며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뇌의 공포 중추로 모든 강한 감정에 관여한다. 일차적인 위험탐지기로 기능한다. 이성적인 사고가 아니라 자기 경험과 확률로 당면한 상황을 눈으로 파악해 알려준다. 감정적인 변연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불안을 ‘불안하다’라고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중요한 시험을 봐야 할 때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불안하다’라는 말 대신 몸이 불안을 표현한다. 주로 복통이나 두통을 호소한다. 불안은 명확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심한 불안은 어떻게 드러나던 우울 증상 중 하나다. 우울증은 편도체의 반응을 높이기 때문에 이 반응성을 낮춰 불안을 줄여야 한다.
해마는 시상하부와 연결되어있고 편도체 근처에 있는 기억 중추다. 기억을 저장하지는 않지만, 장기기억에 관여한다. 새로운 감정 기억이 부정적으로 편향되기 때문에 우울증에서 문제가 된다. 산을 오르다가 뱀을 만나면 해마는 그 사건을 장기기억으로 보낸다. 같은 산에 오를 때마다 해마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여기 낯익은 것 같은데~”라며 나머지 뇌 영역을 자극하여 경계 태세를 갖춘다. 해마는 모교 방문 시 학창 시절의 기억이 잘 떠오르는 것 같은 맥락의존적 기억context-dependent memory의 중심지다. 이는 우울증 상태에서 큰 문제가 된다. 맥락적인 우울증은 평소 잘 떠오르는 행복했던 기억을 사라지게 한다. 인생에서 일어났던 모든 슬픈 일은 줄지어 떠오른다.
전방대상피질은 대상피질의 앞쪽으로 전전두피질과 연결되어있다. 고통과 실수, 이루려고 애쓰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일이 잘못되어갈 때 생각을 곱씹는 경향도 있다. 우울증 상태에서는 집중을 못 하고 부정적인 일에 초점을 맞춘다. 우울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대상피질이 두 상태에 관여한다. 전방대상피질은 스마트폰 액정과 같다. 스마트폰의 메인보드에 수많은 데이터가 있지만 액정에는 우리가 집중하는 부분만 보인다. 이것이 우리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방대상피질에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집중되어 있다. 항우울제가 공통의 표적으로 삼는 것이 세로토닌인 이유다. 약물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도 전방대상피질의 활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 바로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라.
가벼운 교통사고 후 MRI 상으로 정상임에도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다른 사람에 비해 통증에 민감한 사람이다. 이들은 우울 늪에 쉽게 스며든다. 우울 늪에 놓인 사람은 만성 통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걱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통증에 남보다 훨씬 민감한 신체감각에 대한 의식이 증가하여 생긴다. 섬엽이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신체감각으로 전달한다. 섬엽은 피질 일부로 안쪽 깊은 곳에 있으며 편도체, 해마 근처에 있다. 위와 심장 등 내장기관에서 보내는 정보를 처리한다. 감정회로는 당신이 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 스펙트럼을 경험하는 데 꼭 필요하다. 감정회로가 피로해지면 에너지가 바닥나고 우울 늪에 빠질 수 있다. 이때는 감정회로를 조절해야 한다.
전전두피질은 뇌의 가장 앞부분을 덮고 있는 대뇌피질을 말한다. 피질 중에서 가장 최근에 진화했으며 사람의 뇌에서 가장 크다. 계획과 의사결정 회로의 중심으로 뇌의 최고경영자라 할 수 있다. 전전두피질은 사고를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충동을 억제하거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한다. 행동 목표와 의도도 만들어 준다. 전전두피질은 우리 뇌에서 굉장히 넓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를 맡은 역할에 따라 수직과 수평 두 축을 따라 4개 영역으로 나뉜다. 위쪽은 ‘배dorsal’, 아래쪽은 ‘복ventral’, 가운데는 ‘내측medial’, 양 옆부분은 ‘외측lateral’이라 한다.
전전두피질은 사람이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주어 진화상 큰 이점을 제공했다. 생각이 모두 이로운 것은 아니다. 우울증 상태에서 나타나는 근심·걱정과 죄의식, 명확하지 않은 생각 등도 전전두피질이 관여한다. 아침에 세수할 어떤 동기도 느끼지 못한다면 복내측에서 세로토닌이 감소한 탓이다. 군살을 뺄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면 배외측의 활동이 혼란스러운 것이다. 다이어트 계획을 끝까지 실행하기가 어려운 것은 한 영역이나 특정 화학물질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여러 영역과 화학물질 사이에 일어난 대화의 결과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바꾸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의 나쁜 습관을 바꾸며 결단력도 향상할 수 있다.
전전두피질의 내측 부분은 자아에 외측 부분은 외부 세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배측 부분은 이성적이고 복측 부분은 감정적이다. 감정을 다루는 곳이 변연계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이지?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는 일은 복잡하다. 감정을 느끼는 일은 변연계가, 감정에 관해 생각하는 일은 전전두피질의 복측이 관여한다. 변연계는 복측, 선조체는 배측과 많이 연결되어있다. 전전두피질은 주차장에서 주차 문제로 화가 났을 때 감정을 낮추라고 속삭인다. 홈쇼핑에 올라온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습관을 통제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는 새 습관을 들이려고 할 때도 관여한다.
한 가정을 뇌에 비유하면 강아지는 선조체, 어린아이는 변연계, 의젓한 어른은 전전두피질이다. 어른은 날뛰는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주고 생떼를 부리는 아이를 달래기도 한다. 어른이 집안의 즐거움을 모두 없애지 않는다. 전전두피질은 안전한 선에서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조절하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 준다. 제한을 두어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이곳에서 전전두피질이 제일 우월한 것은 아니다. 뇌의 모든 영역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사는 데 모두 필요하다. 감정을 너무 억압하면 단절의 느낌이 들고, 그대로 두면 널뛰는 감정에 휘둘린다. 감정은 뇌와 화학물질의 작용이다. 우리의 선택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우울증은 행동, 감정과 생각을 담당하는 뇌 회로 사이의 대화 결과다. 이 회로가 상호작용하면서 조절한 것, 조절하지 못한 것도 우울과 불안으로 나타난다. 뇌에는 상호작용하는 정밀한 신경회로로 가득하다. 습관 회로도 있고 고통을 느끼는 회로와 즐거움을 느끼는 회로도 있다. 결정 내리기, 잠과 기억 등을 담당하는 회로도 있는데 이들은 모두 서로 대화 한다. 우울증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같은 신경회로를 사용한다. 각 회로가 서로 조율되는 방식은 사람 수만큼 다양하다. 우울증은 이 모든 신경회로가 상호작용한 결과 나타난 활동 중 하나다. 미미한 듯하지만 이 힘이 미치는 효과는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