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일

나에게

by 팬티바람

엄마!

나 오늘 생일이야.

한 달 전부터 짝꿍이랑 같이

근사한 곳에서 맛있는 것 먹어야 된다고

당사자인 나보다 더 보챘잖아

그래놓고 밥 먹으러 가면

잘 먹지도 못하고 맛있다고 했잖아

집에 가는 길에는

매 번 이번 생일은 너도 다 컸으니

선물은 없다라고 엄포를 해놓고

봉투에 10만 원 넣어서 안 받겠다는

내 주머니에 쑤셔 넣었잖아


엄마는 요리를 못하니

미역국을 못해준다고

아쉬워하면서 짝꿍이 해준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엄청 좋아했잖아


미역국이 뭐라고.


엄마!

올해 엄마가 아플 때

내 생일까지만 버텨주길 바랐어

그러면 곧 1월이 오고

새해가 오는 거니까.


새해에는 모두가 행복할 것 같았거든.


엄마!

이모를 만나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했어.

피는 못 속이는지 잠시나마 엄마랑

있는 기분도 들고 지금 내 상태를

잘 이해해주고 계셨어.

그러다가 옛날이야기를 하는데

엄마네 쪽 사람들은 다 조금씩

우울감을 갖고 살고 있대.

그만큼 힘든 시절을 보냈던 거지.

근데 나는 엄마를 많아 닮아서

정이 많고 우울할 거래.


그런가 봐.

엄마가 이상한 거 물려주고 가서 힘든가 봐.

그래서 나 때문에 내 주변도 힘들어.

나도 다 알어.

내가 걱정을 많이 끼치나 봐.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


엄마!

나 사실 엄마가 있어도

생일에는 많이 힘들었어.

연거푸 실패하는 내 인생에 대한

회의감과 더불어 지독한 염세주의 성향이

온몸을 지배할 때면 생일날이

꼭 주홍글씨를 받는 기분이었어.


엄마는 알고 있었지?

언젠가 내 생일에 보낸 문자에

엄마의 위험한 인생에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했던 것 기억나?


내가 늘 고맙지.

이런 비루한 나를 천사라 불러줬던,

천사라 믿고 가버렸던 우리 엄마.


듣고 있어?

나 오늘 생일이야. 엄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