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엄마한테 연락했어?"
"엄마? 아.. 엄마~"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가 내 청첩장을 받아 들고는 나에게 물었다. 순간, 모든 생각의 고리가 갑자기 연결됨과 동시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엄마는 안 부르냐는 말에서 친구의 걱정 어린 마음이 비쳤다.
신기한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는 것. 순간 나한테도 놀랐다. 결혼 준비하던 내내 나는 새엄마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친구의 말로 갑자기 없어졌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내 회복탄성력에 조금 감탄했다. 새엄마와 아빠는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다. 역시나 돈문제였다. 소송이 길어지면서 스트레스는 오로지 우리 가족의 몫이었다. 소송 중에도 같이 살며 서로의 존재를 느꼈다.
이혼 소송은 내가 대학생 때 이루어졌다. 어느 날처럼 학교 캠퍼스를 걷고 있는데 새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해 팩트를 확인하되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나에게 유도 질문을 했다. 난 이 통화가 녹음되고 있음을 물론 알았다. 증거로 쓸 거란 것도 알았다. 우리 아빠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 개의 질문에 '맞다'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믿는 사람이 나일 것이다라는 생각. 나만큼은 자신의 편이 못되어주더라도 부정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찾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을 것 같다.
이 일도 오래전 일이다. 근데 이건 확실히 나에게 아팠던 기억임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내 뇌가 지워버렸기 때문에. 이런 아픔의 기억을 찾지 못하게. 내가 찾지 못하는 구석으로. 밀어내는 쪽으로 내 뇌가 기억을 다시 세팅했나 보다.
그때의 나는 어렸지만 소송 중에 있음에도 현실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친구랑 있을 때는 즐거웠고, 지금의 남편이자 그때의 남자친구와도 재미있었으니까. 생각해 보니 나 좀 대견한 것 같다.
함몰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 나의 일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