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여행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 어떤 게 행복한 삶인가요. 사는 게 힘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혼성 힙합그룹 거북이의 <빙고>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이다.
마치 세상을 달관하고 깨달음의 경지에서 힘들고 고달픈 삶조차도 유유히 즐기며 살아가는 어느 도사님이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노래인 것 같다.
아니면 고달픈 삶을 이겨내고 싶은 소원을 담아 승화시킨 희망사항일 수도 있다.
언젠가 후배의 권유로 한 번 불렀던 노래인데 가사가 좋아 애창하게 되었고, 평소에도 괴로움을 상의해오는 친구들 에게나 나 스스로에게도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다'라고 격려의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원효대사의 일화가 생각났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661년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길에 올랐다. 날이 저물어 굴속에서 잠을 자다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셨던 시원한 물이 날이 밝아 확인해 보니 해골에 괸 물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모두 토해 버렸다 는 이야기.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즉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 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참된 진리를 깨달아서 의상과 헤어져 가던 길을 되돌아왔다고 했다.
시대의 흐름일까. 철학 부재의 21세기의 시대를 바꾸려는 노력이라도 하듯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고 매체를 통해서도 재미있는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한 TV 방송사에서 재미있는 실험 내용을 방영했다 음료수를 10명의 아줌마에게 마시게 한 후 5명에게는 방금 마신 음료수에 유독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몇 시간 후에 구토 증상이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다른 5명에게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몇 시간 후 유독성 물질이 있다고 들은 5명은 모두 배가 아프다며 구토 증상을 일으켰고, 다른 5명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플라세보 효과에 대한 실험이다. 믿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감기에도 특효약이라고 하는 의사의 말을 믿는 마음에서부터 병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믿는다는 것 에는 무서운 힘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무의식적으로 플라세보를 실천한다고 한다.
나도 감기라도 들라치면 증상이 나타나기도 전에 마음부터 약해지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강하고 힘차게 격려를 한다.
그러다 보면 그까짓 것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어느새 다 나은 듯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집안에서도 평소 시어머니와의 생활 속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갈등도 때로는 어른을 모시면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다더니 정말 그랬다. 작년에는 결혼 15주년을 맞아 나는 남편과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한창 자라는 아이들과 사는 나로서는 쉽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아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일이다. 지나간 15년의 결혼 생활을 되돌아보며, 좀 더 행복한 내일, 그리고 후회 없는 삶을 계획하고 싶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등산을 좋아하는 남편을 배려하여 계획한 주말 산행이었다. 우리는 계룡산 입구에서 묵고 이듣날 아침 일찍 산행을 서둘렀다. 산 입구에서부터 싱그러운 공기가 가슴 가득히 메워지고, 새 파란 하늘에 흩어져있는 조각구름은 어느 화가가 우리들을 위해서 그려놓은 듯한 명화로 보였다. 오르막길이 시작되었고, 숨이 차서 혈떡이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등을 떠밀어주는 남편의 손길이 따스했다.
지난 15년간 쌓였던 갈등과 괴로움, 미움, 피로가 계곡의 바람과 함께 한꺼번에 다 날아 가버린 것 같았다. 상쾌해진 기분으로 둘은 정상에 섰다. 뒤범벅이 된 땀도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그 순간 너무나 행복했다. 어제까지의 모든 괴로움을 바람이 다 가져갔나 보다. 오늘은 모든 것이 행복하다고 느껴졌다.
정말 마음먹기 달린 것 같았다.
하산하여 시골 장터의 순댓국 집에 들렀다. 허름한 순댓국 집 때 묻은 나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미래를 달렸다.
5년 후, 10년 후..... 우리의 남은 인생과 자식들의 미래 등등 철없는 소년소녀처럼 길고 장대한 꿈을 꾸었고, 그렇게 살아가자고 다짐했다.
정말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토요일에는 남편의 직장과 관련해서 영국대사관에서 주최하는 영국 여왕의 생일 파티에 초청을 받았다. 이날 여왕의 생일 파티는 세계적으로 각 나라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고 한다. 한국 주재 영국인들과 협찬기업인들을 초청하여 생일 축하를 하며, 양국이 교류하는 장이라고 한다. 남편이 턱시도를 입고 가야 한다는 말에, 갑자기 이리저리 알아보고 바쁘게 집을 나섰다. 나도 친구의 웨딩샵에서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신부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었다. 내친김에 남편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차 안에서 마주 보며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서로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었다.
"나 예쁘지, 그지?"라고 말하는 철없는 아내에게
"응, 결혼할 때 그 모습이야"라고 남편은 멋쩍은 듯 대답했다.
그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냥 그대로 믿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15년 전의 젊고 예쁜 신부 되돌아 간 듯, 작은 나라의 여왕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되었다.
내 마음이니까 말이다.
이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다는 말을 되새겨본다. 그랬다.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
*플라세보라고 하는 독도 약도 아닌, 약리학적으로 비활성인 약품(젖, 당, 녹말, 우유, 증류수. 식염수 등)을 약으로 속여 환자에게 주어 유익한 작용을 나타낸 경우에 플라세보 효과가 나타났다고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