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케 쇼,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역경 극복의 서사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팍팍한 세상살이 속의 ‘미담’으로 언론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확산하고 미디어 컨텐츠 역시 유사한 과정을 관통한다.
누군가는 그를 통해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이 과잉의 이면에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 결핍의 문제로 희석시키고 끊임없이 ‘극복’해내기를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이 녹아있다.
특히 노동력이 개인의 가치로 치환되는 자본의 시대에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노동생산성을 충족시킬 수 없는 이들은 손쉽게 ‘정상성’ 밖으로 내몰린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역경 극복 서사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정확히 중첩된다. 장애를 다루는 대중매체 컨텐츠는 늘 지나치게 아름답다. ‘어려움’을 딛고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해 따뜻한 성취를 이뤄낸다. 그 어려움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나 사회적 구조를 조명하기보다는 극복의 반전을 극대화하기 위해 당사자가 겪는 고통이나 시련이 전시된다.
전형적인 서사가 반복해서 양산되는 이유는 대중의 호응이 보장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려움으로 점철된’ 장애인의 삶은 장애 비당사자의 시선에서 쉽게 대상화되고 연민을 자아낸다. 마치 무해한듯이.
기어코 눈물을 흘리게 하는 감정적 카타르시스는 그렇게 자본주의의 시대에서 손쉽게 소비의 원천이 된다.
미야케 쇼 감독의 2023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이러한 역경 극복 서사를 정면으로 빗겨간다. 주인공은 청각장애를 가진 여성 복서로, 영화는 일본의 실제 프로 복서 ‘오가사와라 케이코’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케이코는 복싱장에서 입모양과 필담 그리고 몸짓을 통해 코치와 소통하고, 집에 돌아와 동생과는 수어로 대화를 나눈다. 장애로 인한 불편함이 도드라지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상을 찌푸리며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바로 호텔 청소 일을 하던 중 동료가 마스크를 쓴 채로 말을 건넬 때이다. 영화는 2020년, 즉 코로나19가 유행하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감염병은 모두에게 불편함을 초래했다. 하지만 감내해야했던 불편함의 수위는 명백하게도 모두에게 같지 않았다. 어떤 이에게 불편함이 마스크를 쓰거나 외출하지 못하는 수준의 답답함이었다면, 어떤 이에게는 타인이 내게 말을 거는지 알 수 조차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케이코가 겪어야’만’ 하는 어려움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호텔에서 수어를 구사하는 동료가 케이코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그러한 의도성을 잘 드러낸다.
이는 케이코에게 일종의 소통 불가능성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장애라는 개인의 손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수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회적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사회적 장애 모델’ 관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영화의 중반 너머 케이코가 친구들과 함께 수어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이러한 관점은 극에 달한다. 줄곧 수어에 따라붙던 자막이 잠깐 사라지고 그들은 소리 없이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비장애인 관객들은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어 당황한 채로 눈 앞에 펼쳐진 이야기에서 소외되고 만다. 관객을 위한 상영관에서 관객을 위한 영화가 상영되는 그 순간 소외의 경험은 탁월하게 생경하다. 침묵이 이어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공기마저 낯설게 느껴진다.
이는 실상 비장애인 관객에게서 케이코를 포함한 스크린 속 인물들에게로 권력이 이동하는 순간이다. 수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는 일종의 결핍을 부여한다. 동시에 장애인들이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매순간 겪어야 하는 소외를 놀랍도록 영리하게 관객들에게 ‘체험’시킨다.
그러나 감독은 현실사회가 장애인들에게 보내는 녹록치않은 시선 역시 놓치지않는다. 케이코가 프로 데뷔에 성공한 직후 체육관을 찾은 기자의 질문이 그를 상징한다.
기자가 관장에게 가장 먼저 물었다. 케이코가 들리지 않는 것이 복싱에서 불리하지 않냐고, 그가 연습할 때 있었던 “어려움”은 무엇이었냐고. 관장은 능청스레 답한다. “케이코는 눈이 좋다”고, “계속 보고 있는다”고.
그는 이어 경기 종소리를 들을 수 없는 불리함에 대해서도 덧붙이지만, “케이코는 눈이 좋다” 말하고서 “이건 어려움이 아니구나”라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서 미야케 쇼 감독이 케이코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게 드러난다.
누구에게나 어려움과 불리함은 있다. 청각장애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대신 케이코에게는 누구보다 강한 끈기와 진심, 연습량이 방증하는 성실함 따위가 있다. 그녀는 링 위에서 상대와 마주한 동시에 세상과 마주했고, 동시에 그 눈에 비친 자신 스스로와 마주했다.
흐르는 땀방울 속에서 그녀가 단단하게 올려냈던 가드는 자신을 지키는 동시에 이 무례하고도 결핍된 세상을 향한 일격이 아니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