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추모공원에서의 기억은 평생 못 잊을 듯하다
몇 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양재동에 자리한 추모공원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으니 아마 오전인 듯.
추모공원 입구는 사진처럼 생겼고, 각종 리무진과 버스 등을 주차할 수 있도록 넓게 만들어졌다.
장례 이틀 반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잔 나는 장례식장에서 화장터로 이동하는 한 시간 반 여동 안의 시간 동안 정말 꿀잠을 잤다. 아버지 영정을 옆 자리에 두고. 그리고 아버지의 시신은 보통 버스 짐칸 자리를 개조해서 만든 버스의 맨 아래 쪽에 싣고.
나는 아기 때부터 두세 살 정도까지 아버지의 배 위에서 잤다고 한다. 덕분에 아버지는 늘 일찍 퇴근해야 했고, 아버지 말씀으로는 그 당시 내가 너무 귀여워 당신의 배 위에서 나를 재우셨다고 했다. 당연히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기였던 나는 내 베개를 들고 짧은 다리를 들어서 떼똑 아버지 배 위로 올라가서 밤잠을 잤다고 한다. 마치 기억나지 않는 그때로 돌아간 듯하다. 아버지와의 마지막은 아버지 배 위에서 편하게 잠들었던 아기 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미리 와계셨던 큰 외삼촌이 달려온다. 그리고 함께 버스를 타고 온 5명의 남자들과 함께 아버지의 관을 들었고, 장례지도사는 나에게 영정 사진을 맡겼다. 내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엄마와 오빠가 따르고 장례지도사의 인도하에 6명이 관을 들고 화장장으로 향했다.
천장이 높은 철제로 된 대형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이 관을 인계받기 전, 짦은 이별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때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잠든 관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편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이후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관을 들고 안으로 사라지고 큰 문이 닫혔다. 뭔가 헛헛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일찍 도착한 덕분인지 화장 시간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서 일행들과 우리 가족은 점심 식사를 위해 추모공원 내 구내식당으로 갔다. 산 사람은 먹어야 살지. 시니컬한 감정으로 뭘 먹을까 골라보지만 식욕이 당기질 않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양재 추모공원 근처 맛집이 몇몇 있다고 하는데, 화장터에 온 유가족 중 그런 맛집으로 가서 식사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다른 유가족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택했고, 메뉴는 다양했지만 형편없는 맛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분노하며 대부분 남기고 말았다. 커피값 역시 비싼 구정물일 뿐이었다.
서울추모공원 홈페이지나 시설 소개를 보면 화장터라는 선입견을 지운 조경을 가장 큰 자랑거리인 양 구구절절 써 놓았다. 아니, 유가족이 그런 조경이 눈에 들어올까? 실제로 보니 조경을 잘 만들어 놓긴 했지만 그게 중요한가? 뭣이 중헌디?
아니면 인근 주민들이 선입견을 지우고 화장터를 산책로나 운동코스로 택할까?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서울시설공단은 쓸데없는 조경에 들일 비용이 있으면 유가족을 위한 부분에 더 신경을 쓸 것이지. 먹을 곳 마실 곳은 단 한 군데뿐이었다. 독과점이니 엉망일 수밖에. 아무튼 우리나라 공무원의 탁상 행정에 다시 한번 깊은 빡침을 느꼈다.
엉성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장례지도사는 우리 가족을 역시 전망이 끝내주는 방으로 안내한다. 고급스러운 소파가 여럿 놓여있었고, 통유리로 보이는 바깥 조경도 근사했지만, 우리 가족은 전방에 있는 전광판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 님, 화장 준비 중 - 화장 중 - 냉각 중 - 화장 완료
장례 3일 차 - 발인 마지막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