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일 박스

사실은 피자를 제일 좋아합니다

by 붕대토끼


베란다에 나가니 포일로 덮인 박스가 하나 놓여있었다. 들여다보니, 어젯밤 가족들이 시켜 먹고 남은 치킨 조각들이 들어있었다. 눅눅해진 기름 냄새사이로, 내가 빠진 저녁의 풍경이 스며있었다. 식탁 위를 오갔을 웃음소리와 따듯한 온기는, 나를 빼고 다녀간 듯했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줄곧 내게 이 말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넌 그거 먹으면 안 되잖아."




그 말은 단순한 주의가 아니었다. 나를 자리에서 조용히 밀어내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그 이후로 어떤 음식을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에 주춤하기 시작했다. '먹고 싶다'는 말보다 '안된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고, 말속에 들어있는 외로움이 먼저 입안에 들어왔다.


옆에 아무도 없었지만 누군가는 내게 속삭였다.


'넌 그거 먹으면 안 되잖아'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나도 알아'




집전화기로 숫자를 꾹꾹 눌러 주문을 하면, 사장님이 직접 배달을 해주시던 그 시절.

빨간 빵모자 로고를 단 동네피자가게를 오래도록 좋아했다. 제일 좋아하던 메뉴는 슈퍼슈프림.

치즈 사이사이에 채소들이 알알이 박혀있었고, 특히 까만 올리브와 동그란 불고기가 마음에 들었다. 초록색 피망은 식전 의식처럼 하나하나 골라내곤 했다. 빵 테두리는 조금이라도 더 구우면 타버렸을 듯한 진갈색을 띠고 있었는데, 그 바삭함이 입안에서 사각하고 부서질 때마다 흥얼거림이 절로 나왔다.


시험이 끝난 마지막 날이면, 점심 급식을 거르고 후다닥 집으로 달려왔다. 아침에 엄마에게 받아놓은 만오천 원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선 전화기를 들었다.


"슈퍼슈프림 라지 한 판이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릴 때까지 창가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피자와 함께 1.5리터 코카콜라 그리고 새하얀 드레싱이 얹힌 양배추 샐러드가 왔다. 빨간 리본으로 묶인 피자 박스를 풀고, 커다란 머그컵에 콜라를 가득 한잔 채운 다음, 샐러드를 정성스레 버무리고는 한 상을 차렸다. 아무도 없는 오후의 낮, 슈퍼슈프림 라지 피자 한 판을 먹는 기분이란 몽실몽실 흰구름 위에 누워서 둥실둥실 낮잠을 자는 것 같았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그 시간이, 오롯이 나만을 위한 선물 같았다.




루푸스를 진단받은 후, 피자를 시켜 먹지 못한 건 아니었다. 피자를 먹고 싶다는 말은 열 번 중 한 번,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겨우 꺼내볼 수 있는 용기였다.


먹을 때도 어딘가 꽉 막힌 것처럼 불편했다.

한 입 물때마다, '난 먹으면 안 되는데'라는 조용한 죄책감이 따라 들어왔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을 생각하다 겨우 말을 꺼냈다.


"저는 한식이랑 샐러드를 좋아합니다."


된장찌개도, 비빔밥도, 샐러드도 맛있으니까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는 음식 같았다.




무엇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이제 대답의 주인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가 되었다.


'너 그 음식 좋아해도 되는 거 맞아?'라는 검문소를 통과한 대답만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뒤에 숨어 있던 가슴은 대답할 순 없었지만, 누구보다 크게 외치고 있었다.



'사실은 피자를 제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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