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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만들 의사는 많은데, 아기 받을 의사는 없다?

대한민국 산과의 치명적 양극화-고위험 임신 피하고 각자도생해야 하는 이유

by YM Chung

아기 만들 의사는 많은데, 아기 받을 의사는 없다?

-대한민국 산과의 치명적 양극화

-고위험 임신 피하고 각자도생해야 하는 이유


한국 의료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생명의 탄생을 책임지는 산과 영역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2024년과 2025년에 전국 의대에서 산과 교수 10명이 사직했습니다. 전국 40개 의대 중 산과 전임 교수가 2명 미만인 곳이 21곳(52.5%)으로 절반을 넘고 1명인 곳이 11곳, 아예 없는 곳도 2곳이나 됩니다. 밤낮 없이 일어나는 고령, 다태아 등 고위험 산모의 응급 상황을 극소수가 몸을 갈아넣어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고위험 분만을 책임지고 후학을 양성할 산과 전임의(펠로우)는 2025년 현재 전국에 9명뿐입니다. 전공의도 마찬가지입니다. 40개 의대 중 절반이 넘는 21곳에서 2024년에 산과 전공의를 단 한 명도 뽑지 못했습니다. 2025년 상반기에는 1명, 5월 추가모집에서는 22명만 산부인과를 지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난임 병원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기를 갖으려 노력하는 부부도 많고, 이들을 돕는 의학 기술도 최고 수준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산과의 이중 위기이자 치명적인 양극화입니다. 아기를 만드는 의사는 넘쳐나는데, 정작 그 아기를 받아줄 의사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인력 불균형이 아닙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분만 인프라 전체의 붕괴를 의미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특히 임신을 계획하거나 현재 임신 중인 여성과 그 가족의 몫입니다.


1 분만실은 왜 텅 비어가는가?


분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시스템이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파멸적인 사법 리스크입니다.

분만에서는 현대 의학으로도 100% 예측 불가능한 불가항력적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법원은 그 불가항력의 책임을 의사 개인에게 지우고 있습니다. 이런 판결들이 산과 의사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너무나 선명합니다. 분만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매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후에 경미하다고 판단될 수 있는 작은 실수조차도, 인생을 파탄낼 수 있다는 것이죠. 이 공포가 방어 진료를 낳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분만을 시도하다 수억, 수십억원짜리 소송을 당하느니, 처음부터 모든 변수가 통제되는 제왕절개를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지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세계 1위의 제왕절개율입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제왕절개 건수는 출생아 1,000명당 610.6건입니다. OECD 평균 292.5건의 두 배가 넘습니다. 세계보건기구 권고치인 10~15%는 아예 무시되고 있습니다.


둘째, 붕괴된 경제 방정식입니다.

의사들이 분만실을 떠나는 또 다른 이유는, 분만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기괴한 수가 구조 때문입니다. 2022년 기준 산부인과의 원가보전율은 61%에 불과합니다. 100만 원을 들여 아기를 받으면 61만 원만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2024년 한국 제왕절개 수가는 약 250만 원으로, 미국 1500만원, 영국 1200만원,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256만 원보다도 낮습니다. 24시간 응급 대기와 사법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가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수준입니다. 결국 이 두 가지, 사법 리스크와 경제적 파탄이 맞물려 전국의 분만 인프라가 무너졌습니다.


그 결과 분만이 가능한 산과는 1999년 1,865개소에서 2025년 현재 400곳 이하로, 25 년 만에 4분의 1 토막이 났습니다. 중소 규모의 분만 의원은 사라졌고, 대형병원은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전국 250개 시·군·구 중 30.8%에 달하는 77곳에는 아기를 낳을 병원이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분만 난민, 원정 출산은 이미 현실입니다.

2 난임 병원은 왜 넘쳐나는가?


분만실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지는 동안, 산부인과의 또 다른 축인 난임 분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분만 현장이 의사들을 쫓아냈다면 난임 분야는 의사들을 강력하게 끌어들였던 것입니다. 왜일까요?


첫째, 통제 가능한 진료 환경

난임 시술은 대부분 외래 기반으로, 시술 일정을 사전에 계획할 수 있습니다. 분만처럼 365일 24시간 응급 대기를 설 필요도, 예측 불가능한 사고로 수억 원대 소송에 휘말릴 위험도 거의 없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지인 것입니다.


둘째, 안정적인 시장과 정부의 지원

만혼과 고령 출산이 보편화되면서 난임 환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2018년 12만 1천 명이던 난임 시술 환자는 2022년 14만 명, 2024년에는 16만 4천명을 넘어섰습니다. 2024년 출생아수 238,317명과 비교하면 이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여기에는 정부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난임 시술비 지원을 대폭 확대한 것이 크게 작용을 하였습니다. 2024년부터는 소득 기준까지 전면 폐지되었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임신과 분만에 기괴한 양극화가 출현합니다. 정부는 난임 시술을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사법 리스크와 저수가가 의사들을 분만실에서 내쫓습니다. 탈출한 의사들이 안정적이고 정부가 시장까지 키워주는 난임 병원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 아닐까요? 데이터가 이를 증명합니다. 분만 병원이 20년 만에 75% 가까이 사라져 400개 이하로 감소하는 동안, 난임시술 의료기관은 2015년 157곳에서 2025년 263개소로 오히려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법적 위험, 삶의 질, 재정적 안정에 따른 지극히 합리적인 변화입니다. 문제는, 그 결과 공중 보건의 파국이 조용히 밀려오고 있다는 것이죠.


3 희망의 역설-난임 시술이 만든 고위험 임신


이제부터가 진짜 문제입니다. 난임 시술이라는 희망이, 역설적으로 고위험 임신이라는 또 다른 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첫째, 난임 시술로 다태아 임신이 폭발적으로 증가되었습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다태아 출산율은 분만 1,000건당 26.9건으로 세계 2위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세쌍둥이 이상 고차 다태아 출산율은 1,000건당 0.59건으로 압도적인 세계 1위입니다.

둘째, 다태아 임신은 필연적으로 조산아, 미숙아 분만으로 이어집니다. 다태아 임신의 조산율은 단태아보다 무려 10배나 높습니다.

셋째, 조산은 인구의 질적 저하라는 장기적인 부담을 만듭니다. 조산, 특히 극소저체중출생아(VLBWI)로 태어난 아기들은 뇌성마비, 발달장애, 만성 폐질환 등 평생에 걸친 건강 문제에 직면할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첨단 보조생식술(ART)에 의존하면서 이 난임시술로 다태아/조산이라는 고위험 임신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고위험 산모들을 안전하게 분만할 분만 인프라는 사법 리스크와 저수가로 붕괴되고 있습니다. 고위험 산모를 마주한 의사는 방어 진료를 위해 또다시 제왕절개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태어난 조산아들은 엄마 품이 아니라 만성적인 병상 부족에 시달리는 신생아집중치료실로 가게 됩니다. 결국, 저위험 자연분만은 사라지고, 고위험 제왕절개와 신생아중환자실 입원만 남는 고비용-고위험 출산 시스템이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위험 임신, 제왕절개, 다태아 출산, 미숙아중환자실 입원을 너무나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치 전 세계 모든 선진국이 우리와 같은 줄 압니다.


하지만 이것은 치명적인 착각입니다. 이는 난임 시술의 폭발적인 증가와 그로 인한 다태아 임신의 급증, 그리고 분만 의사들이 파멸적인 사법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방어 진료'가 합쳐져 만들어 낸 고위험 의료 개입의 악순환입니다. 저위험 자연분만이라는 '정상'은 붕괴하고, 고가의 첨단 기술과 수술적 개입이라는 '예외'가 이제 대한민국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4 각자 도생의 시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산과 의료 시스템은 두 개의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단일 배아 이식 등 엄격한 기준 없이 난임 시술비가 지원되면서 다태아 고령 임신이라는 고위험 임신이 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고위험 임신을 감당해야 할 분만 시스템이 사법 리스크와 저수가로 인해 붕괴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위험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되었습니다. 의사는 파산 위험을, 산모와 가족은 고위험 임신과 분만이라는 평생의 짐을 각자 감당해야 합니다. 국가 시스템이 무너졌기에, 이제는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는 분들께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조언을 드립니다.


첫째, 고령 임신을 피하십시오. 고위험 임신의 가장 큰 요인은 35세 이상 고령 임신입니다. 2024년 기준, 국내 산모의 35.9%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40세 이상 산모의 모성사망비는 35-39세 산모의 2배가 넘습니다.


물론 임신 시기를 개인이 마음대로 조절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절 가능한 고위험 요인은 피해야 합니다. 바로 다태아 임신입니다. 만약 난임시술을 받는다면, 임신 성공률이 조금 낮아지더라도, 건강한 단태아 출산을 위해 단일 배아 이식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현재 개인이 고위험 임신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고령 임산부와 다태임신이 늘어날수록 임신 합병증, 응급수술, 태아와 산모의 생명이 위험해질 확률도 커집니다. 그 와중에 점점 더 열악해지는 분만 인프라는 산모와 가족을 위험에 내몰고 있습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응급 상황에 응급실, 대형 산부인과, 대학병원을 찾아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고위험 임신을 피하는 것만이 나와 내 아기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기를 만드는 의사는 많습니다. 하지만 아기를 안전하게 받아줄 의사는 조용히 사라지고 늙고 있습니다.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 필수의료 붕괴의 가장 적나라한 민낯입니다. 붕괴된 시스템이 회복될 때까지 우리 모두 살아남읍시다.


대학병원 산과 붕괴… 고위험 산모 맡을 전문의 사라진다https://www.chosun.com/national/welfare-medical/2025/08/19/SMYMOA2Q3FB6JGWBASVNSVKV7Y/

https://youtu.be/TAs_IOBLZwY?si=DFRjYAHjhzn32cX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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