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직장 동료가 외교관 커리어 35년의 열정을 담은 신간 "외교관은 나의 인생"을 출간했다. 자신이 한 활동 중 비밀은 빼고, 술술 읽히는 필체로 솔직하게 썼다. 35년 직장 생활을 했으면 꼰대 필체에 익숙해 고리타분하고 식상한 내용이려니 했는데 내 예상이 빗나갔다. 축하합니다. 그대의 헌신과 열정을.
그는 유력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외교관을 "나에겐 좋은 직업, 요즘세대엔 극한 직업... 외교관 줄사태를 막으려면 처우개선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처우개선이 물질적 보상만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을 것으로 본다.
10월 8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외교부 중도 퇴직 공무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제 발로 떠난 의원면직자 수는 2020년 34명에서 2021년 53명, 2022년 63명, 2023년 75명으로 꾸준히 늘었다고 한다.
자진 퇴사가 꾸준히 늘고 있고, 외무고시를 한 젊은 사무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최근 3년 합치면 200명이 넘는다. 외교부 인원이 2천여 명으로 보면 10%에 해당한다. 얼마간 스카우트되는 경우를 별도로 하더라도 대다수 미지의 새로운 도전을 나서는 것이다.
어렵게 외무고시를 해 외교관의 꿈을 꾸며 입부한 그들이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간다. 다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으나 최근 MZ 세대 풍조에 따라 로스쿨로 가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지레 짐작한다.
국회의원이며 각 분야에 법조인 진출이 두드러지는 반면, 외무고시를 하더라도 최소 25년 걸리는 대사를 한다는 보장이 점점 옅어지는 미래에 대한 합리적 선택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국내 부처 공무원들도 세종으로 내려가 주말부부로 지내는 경우가 많아 배우자로서 만점은 아니다고 한다. 하물며 해외를 오가다 보니 결혼이 쉽지 않다. 특히 대사가 되면 배우자 없이 활동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 본부 국장을 지낸 고위 여성 외교관들은 대사나 총영사보다 선진국 큰 공관의 2인자 차석대사를 희망한다는 안타까운 얘기가 있다.
이러다 보니 부부 외교관수가 늘고 있다. 데이트할 시간도 없고, 국내와 해외를 오가는 직업을 이해해 주는 배우자로서 부부 외교관이 차선일지 싶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부부외교관 수는 40여 쌍 내외였는데 지금은 2배는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부부 외교관을 같은 공관에 동시에 배치하는 게 사실상 막혔다.
최근 내가 잘 아는 부부 외교관 중 남편이 사직했다. 그는 초딩 2명을 두고 있는데 1년만이라도 같은 공관에서 일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허용되지 않아 15년 다닌 직장을 떠나 부인이 있는 곳에서 자녀를 키우며 사업을 한다.
그는 유수 미국대학 졸업에 외무고시 출신에다 하바드 케네디 스쿨까지 나온 재원으로, 원어민 실력의 영어와 스페인어는 물론, 업무 능력까지 겸비한 그를 떠나보내는 송별 저녁에서 "잘했어, 너 정도 실력이면 밖에서도 잘할 거야"라고 격려해 주었지만, 그가 없는 우리 조직이 지금은 튀는 나지 않겠지만, 멀리 보면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최소한 이런 부부 외교관들이 자녀양육도 하며 좋은 외교관도 되는 그런 환경은 없을까 하던 차에, 해외에 있는 절친 동료로부터 캐나다 언론 기사를 하나 받았다.
최근 부임한 주캐나다 독일 대사 부부가 캐나다 정부에 공동으로 신임장을 제정했다는 내용이다. 부부가 8개월씩 번갈아가며 대사하고 나머지는 자녀양육을 전담한다고 한다. 독일 외교부는 여타 국가에서도 대사뿐 아니라 공사나 참사관 자리에도 이를 적용한다고 한다. 이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젊은 외교관들의 니즈를 반영해 우수 인력을 잡아 두겠다는 혁신적 방안이다.
우리는 지금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살고 있고 인구가 줄고 있다. 지금처럼 외교관 줄사퇴가 이어지면 사람이 중요한 외교부가 조직으로서 그 역할 다 수행하는데 어려움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우리도 독일처럼 부부 외교관이 같은 공관에서 번갈아 가며 근무하면서 자녀 양육도 하는 그런 근무환경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제 외교 무대에서 떠난 OB의 넋두리로 비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친정이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자 '일종의 집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