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명의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숙소에서 안주를 사서 서로의 연애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이 있었다. 우리 모두 '생각할 시간'을 강제로 가져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생각할 시간을 갖자" "너무 지쳤어... 서로 간의 시간을 가지자" 등등. 각자 들은 멘트는 달랐지만 의미는 같았고 결과는 다 같았다. 전부 그 멘트는 헤어짐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그 멘트를 뱉었던 그녀들이 그 멘트를 뱉었던 결과는 하나도 다를 것 없이 같았다.
희망을 갖고 방문해 주신 분 들게는 죄송하지만 내 주변의 데이터 상으로는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 이 말이 이별로 이어졌던 경우가 100%였다... 당연히 각자의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헤어집니다. 이런 말은 아니지만 만약 그녀나 그가 충동적으로 뱉은 말이 아닌, 충분히 고민 후에 한 발언이라면, '시간을 갖자는 말 = 헤어질 준비를 할 시간을 갖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나는 불과 두 달 전에 상대방에게 시간을 갖자는 말을 들었다:
최근 인도 여행을 가 있을 때 한국에 있던 그녀는 말했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 현실적인 이유도 생각나고 네가 한국에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전 만큼 좋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할 시간을 갖자..."
그 얘기를 듣고 바로 노트북을 켰다. "시간 갖자는 여자친구 무슨 의미인가요?"라는 검색어를 구글, 유튜브 검색창에 도배했다. 그다음 모든 이별 관련 영상들을 10초 넘기기 버튼을 연타하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내용 파악을 했다. 그리고 가장 희망적인 해석을 적용했다. "여자친구가 정말 지쳤구나... 시간 지나면 연락 주겠지." 생각하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연락 달라는 말 밖에 못했다.
그땐 나의 그 말이 마지막 카톡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최대한 쿨내를 풍기며 대답했지만 그 후에 하루하루는 지옥 그 자체였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인도의 첫 커리를 먹으면서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타지마할을 구경하면서도, 인도의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서도 그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밤마다 자기 전에 그녀의 답장이 오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를 늘 생각하고 노트에 정리했다...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말을 듣고 일주일이 지난날, 하루종일 핸드폰을 확인했다. 알람이 오면 그냥 파블로프의 개처럼 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졌다. 그리곤 생각했다. "이럴 바엔 내가 먼저 연락할래." 하고 카톡을 보낼 멘트를 작성했다. 그러나 전송 버튼을 차마 누르지 못했다. 왜? 기다리겠다고 말해놓고 그것도 못 기다리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그리고 그녀가 언급한 현실적인 문제를 내가 책임지고 해결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전송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2주가 지났다. 인도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혹시라도 보자는 연락이 올까 봐 한국에 오자마자 미용실에 갔다. 살은 2kg 정도 빠졌다. 오히려 살이 빠졌으니까 나를 보고 다시 좋아해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3주가 지났다.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냥 끝난 것 같았다. 이렇게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잠수이별 당한 것같았다...
25일이 지났다.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아름다웠던 추억은 다 날아갔다. 연애할 때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기가 생각나지 않았다. 미련이 1도 없었다. 먼저 카톡을 보냈다.
"이렇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아닌 거 같다. 만나서 마무리를 하던 힘들겠으면 전화를 해서라도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다음 날 일어나서 카톡을 보니 답장이 와 있었다.
"내일 혹시 전화로 대화할 수 있을까?"
있던 정이 다 떨어졌다. 전혀 헤어져도 아쉽지 않았다. 원래 할 말은 정말 많았다. 다 적어놓고 기억하려 했었다. 만났을 때 어떤 얘기를 할 지도 다 생각해 보고 상상도 해봤다. 근데 그녀에게 난 3주간 잠수 타고 전화로 이별을 통보할 만한 정도의 사람이었나 보다. 사실 이렇게 느꼈다기 보단 그저 껄끄러운 상황은 최대한 회피하려 하는 회피형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며칠 동안 작성한 그녀에게 할 말. 그 말을 하지 못해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난 "그냥 지금 전화하자"라고 했다. 답장이 오자마자 그냥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아무리 생각해도 연애를 지속하지 못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나와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고 자기에게 할 말이 있냐고 묻더라... 너무 예상했던 답변이라 별로 슬프지도 않았다. 화를 내며 지금 3주간 연락을 두절하고 그게 할 말이냐며 따질 의지도, 정도 없었다.
난 그녀에게 연애하면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준비했던 몇 페이지가 될 말들 중에 좋은 말들만 기억해서 얘기했다. 연애를 하면서 이렇게 안정적이고 의지가 됐던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이런 연애를 할 수도 있구나를 알려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 그녀랑 논쟁하고 얘기가 길어지는 게 싫었다.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후에 자신도 고마웠던 부분들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1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그녀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1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충 듣고 그녀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 그녀와의 전화는 7분 11초였다. 허무했다. 슬프지도 않았다.
분명 그녀와의 연애는 행복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 행복했고 사이도 좋았다. 서로 싸우지 않았고 서로 배려했다. 그녀가 걱정할 때 그녀의 자존감을 올려줌으로써 그녀가 괜찮아지는 모습을 보며 만족했다. 인도 여행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손 편지를 써주며 서로의 마음을 표현했다. 어머니께 자랑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너무 갑작스럽게 시간을 갖자고 한 점, 잠수 이별을 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점, 전화로 이별을 통보한 점은 그녀와 나눴던 추억도 부정적으로 왜곡시켰다. 이별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한 빈 말이 생각났다. "지금까지 연애하면서 차인 적은 없지!ㅎㅎㅎㅎ"
아아...
부끄럽지만 과거 처음 헤어짐을 통보할 때 '그' 멘트를 말한 경험이 있다. "생각할 시간을 갖자." 그 후, 일주일이 지나고 만나서 헤어짐을 통보했다. 슬퍼하는 그녀를 봤지만 마음이 떠났던 나는 별로 슬프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며 더 일찍 이별의 사인을 줬으면 그녀가 조금 덜 힘들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쓰레기 같은 생각도 했다.....
"이별을 고하는 나도 힘들다고! 어쩌면 내가 더 힘들지 몰라 왜냐면 나는 이별을 통보하는 용기를 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어쩌면 쓰레기로 남을 수 있겠지만 사실 헤어졌으니 어쩔 수 없지."
잠시라도 이렇게 생각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고 전 연애상대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녀들에게도 내가 이와 같은 행동들을 했을까 봐 말이다. 이렇게 아프고 힘들 줄은 몰랐다. 많이 반성했고 느꼈다.이별통보를 받을 때의 고통은 이별을 통보할 때의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통이구나... 이래서 실연이 정신적인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는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