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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굽쇠 Oct 12. 2023

자극적인 콘텐츠가 싫다

고구마 가득한 사연들은 이제 자제 좀

   주변에 자극적인 콘텐츠가 많다. TV, OTT뿐만 아니라 각종 SNS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심지어 어느 한 쪽에서 만들어져 그 안에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한 플랫폼에서 만들어진 자극적인 콘텐츠가 여러 가지 형식으로 가공되어 다른 플랫폼에서도 반복적으로 생산·소비된다. 예컨대 TV, OTT, 유튜브 등에서 콘텐츠가 만들어지면 이를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으로 옮기는 방식 등이 있다.



   내가 지목하는 ‘자극적인 콘텐츠’란 보는 사람에게 주로 긴장감, 답답함, 스트레스, 분노, 불쾌함, 찝찝함, 언짢음, 혐오감 등을 느끼게 하는 서사나 시·청각적 요소를 주된 아이템으로 삼는 콘텐츠들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콘텐츠에 빠져들고 몰입한다. 때로는 열광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콘텐츠가 그들의 뇌든 무엇이든 자극하고 그들은 그 자극을 ‘재미’로 받아들인다. 그 재미에는 콘텐츠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콘텐츠에 대해 생각하고 비평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자극적인 콘텐츠가 싫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거나 재밌는 수다거리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반대로 스트레스가 쌓인다. 자극적인 콘텐츠들 대부분이 그 내용 자체에 스트레스가 쌓이는 모습들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기에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스트레스는 나 때문에 그런 것도, 내 주변의 타인 때문인 것도 아니다. 누군지도 모르고 마주칠 일도 없을 생판 남의 진짜 또는 가상의 이야기 때문이다. 허공에서 끄집어 내온 창조 스트레스를 원치 않게 떠맡은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본 콘텐츠에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난 그 시간 동안 두 배의 손해를 보는 셈인데.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고 나면 눈과 귀와 머리가 피폐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보고 나면 정신이 얼얼하고 쓰린 감각이 느껴진다. 마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입 안이 얼얼하고 속이 쓰리듯이. 실제로도 나는 입이 얼얼하거나 속이 쓰린 것이 싫어서 매운 음식을 되도록 피한다. 먹을 때의 감각도 그렇게 유쾌하진 않지만 그 뒤의 감각은 더욱 불쾌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속이 확 풀린다는데 난 그렇지 않다. 좋은 감각을 느끼고 싶어서 맛있는 음식, 재밌는 콘텐츠를 찾는 거라면 자극적인 콘텐츠는 나와는 상극인 셈이다. 그렇기에 매운 음식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극을 주도록 만들어지듯이,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받게 하고 일부러 화가 나도록 만드는, 그 정도로 답답한 상황이나 사례를 메인 요리 삼아 제공하는 콘텐츠들이 난 싫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들을 굳이 찾아보지도 않고 SNS 상에서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싫으면 네가 안 보면 된다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 말도 옳다. 내가 싫다고 남도 싫어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 취향 분포와는 별개로 콘텐츠의 다양성 차원에서 그런 것들도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속이 편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주류가 되는 것은 싫다. 안 그래도 일상에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원격으로 스트레스를 더 얹어주는 콘텐츠들이 방송 프로그램의 트렌드가 되거나, 그것을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 되는 것이 싫다. 까탈스럽게 구는 걸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나에게 ‘문화’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것이 싫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하기 벅찬데, 굳이 저 멀리 생판 모르는 남의 일까지 가져와 나를 괴롭히는 데 써야 할까. 살면서 피할 수 없고 나의 생존 또는 성장을 위해 감수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필요하지도 않은데 쓰레기장에 굳이 제 발로 찾아가서 답답하고 불쾌하고 피폐해지는 건 성장도 성숙도 아닌 그저 자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난 그런 콘텐츠를 일부러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잘 팔리는 지금의 ‘트렌드’가 사그라들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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