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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Feb 28. 2024

아틸리싸이-☆

모두 다 원하는대로

올핸 내가 제일잘나가 들엇지만 부작용으로 집을나오게됏엉

 언젠가부터 새해 첫 곡을 신중히 정하는 게 모두의 연례 행사가 됐다. 새해가 밝으면 온갖 희망찬 제목의 노래들이 차트를 줄짓는다. 1월 1일 0시에 들은 노래대로 한 해가 흘러간다는 미신 때문이다. 참 웃기고 귀여운 사람들이다. 가수가 노래 제목 따라 간다는 말은 가수의 업이 노래이기에 수긍하게 되지만, 우리는 대체 뭐라고 노래 따라 한 해를 살게 된다는 건지. 믿을 이유 하나 없는 말에 모두가 고민하는 31일 밤이라니!


 출처 모를 신뢰가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고민해봤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의지하고픈 마음이라는 결론이 났다. 새해는 희망차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예측되지 않아 두렵기도 하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치 앞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휩싸이는 12월이 여러모로 두근두근하니까. 앞이 안 보일 땐 지팡이라도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새해의 길잡이가 되어줄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깊이를 가늠하고 싶을 땐 돌맹이 하나를 던져 본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안 보일 땐 나뭇가지를 내밀어 본다.
바람이 부는지 느껴볼 땐 풀을 날려 본다.


그러나 새해가 어찌 될지 궁금할 땐 그 무엇도 미래로 내던져볼 수 없다. 그럴 땐 그저 빌어보는 것이다.

‘이 노래 제목처럼, 이 노래 가사처럼 되게 해주세요-’하고.



이거 어디까지 맞는 거예요~?

 스무 살이 되던 때에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난 그해에 강원도에서 서울로 대학을 가느라 집을 나와 기숙사로 향했다. 스물 한살이 되던 때엔 새해 첫 곡 미신을 까먹고 다른 걸 들었다가 놀란 기억이 난다. 무엇을 들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하여튼 정말 놀랐었다. 스물 두살이 되던 때부터는 새해 첫 곡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올해도 그냥 듣고 싶었던 노래를 들었다.


 이찬혁이 새해에 맞춰 <1조>라는 노래를 냈다더라, 우주소녀의 <이루리>를 12월 31일 23시 59분 nn초에 틀면 0시에 “모두 다 이뤄질 거야~”라는 가사가 나온다더라…하는 말들은 필요 없었다. 노래 같은 걸 찾아 틀지 않아도 알아서 잘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은 참 간사했다. 노래에 의지하지 않은 해에 어떤 나쁜 일이 생기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후회를 했다. 아 그때 그 노래 들을 걸. 그냥 뭐라도 이뤄지게 해주세요~라고 해볼 걸. 사실 요즘에도 1월 1일의 나를 종종 떠올린다.



난 새해가 뜨기 전에 꽁꽁 언 땅을 파…

 그래서 했던 시도가 있다. 1년 묵은 편지를 꺼내보는 일이었다. 노래 대신 택한 일이었다. 노래를 고르는 일은 단 몇분이면 되지만, 이 일은 무려 1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은 아래와 같이 진행된다.


[new year routine]  

1. 2022년 1월 1일에 1년 뒤 나에게 편지를 쓴다.

2. 어딘가에 묻는다.

3.1년동안 잘 숙성시킨다.

4.2022년 12월 31일 혹은 2023년 1월 1일에 다시 열어본다.


실제로 해본 후기: 정말 좋다!! ★★★★★(5.0/5.0)


실제로 집 뒤 어딘가에 묻었었다


 노래 제목에 한 해를 던져보는 것보다 과거의 나에게 기대는 편이 더 잘 맞았다. 1년 뒤 나에게 편지를 쓰는 일도, 꽁꽁 언 땅을 파고 편지를 묻어두는 일도, 이 일을 1년동안 까먹지 않는 일도 난이도가 낮지는 않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오는 법. 어딘가 누렇게 변한 편지를 펴고, 한 살 어린 나를 마주하는 일은 정-말 감동적이다. 아래는 스물 둘의 내가 스물 셋의 나에게 썼던 편지 중 일부이다.



너에게 해줄 말은 고생했다, 충분히 잘 해냈다는 말 뿐이야.

나 자신이 날 격려하지 않으면 가라앉기 마련이니까.

아직 아무 타격 입지 않은 내가 널 진심 가득 담아, 질투심 없이 응원하고 격려한다.

(중략)

가장 중요한 것은 바라는 대로 되지 못하더라도 난 과거의 나이기에

지금 너에게 실망하는 사람은 이 편지에서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언제나 또 다른 내가 있기에 무엇이든 자신감 갖고 도전하고, 헤쳐나가라.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가 잘 풀리길 소망하는 것보다 과거의 나를 만나는 일이 더 좋았다. 특히 질투심 없이 응원한다는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며칠 전 나영석의 와글와글에 나온 지구오락실 멤버들을 보는데, 이은지가 이런 말을 했다. “20대 때는 축하할 일이 생겨도 속에 약간 부러움이 있었거든요. 근데 처음으로 부러움 없이 축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게 이 셋(안유진, 이영지, 미미)이었어요.” 나 또한 부러움 없이 축하해본적이 없기에 너무나 공감이 갔고, 과거의 나에게 고마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해보자면, 새해 첫 곡을 고심하는 것이나 1년 뒤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나 본질은 같다. 방식만 다를 뿐이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간절한 마음은 언젠가 통하기 마련이다. 간절한 마음은 현실이 되어 통하기도 하고, 간절한 마음을 가진 이들끼리 눈빛만으로 통하기도 한다. 강지영 앵커와 임지연 배우의 눈물의 뉴스룸처럼 말이다.


 벌써 3월을 바라보고 있다. 각자 무엇을 그토록 바라왔는지 희미해진 즈음이다. 그래도 무언가 마음 속에 새겨져 있다. 꼭 새해를 맞이하던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결국 ‘나’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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