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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real Apr 03. 2023

오늘은, 치앙마이로 출근합니다. #3

11시 30분

오전 근무가 끝났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 호스텔에서 시내까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10분이 걸린다. 시내에 도착하면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카페로 이동해야 한다. 잠깐의 헤멤도 허락되지 않는 타이트한 1시간이기에 루트는 이미 완벽히 정해놨다. 어디로 어떻게 이동할지, 가서 무엇을 먹을지 미리 모두 고민해두었기에 물흐르듯 흘러가기만 하면 된다. 자 이제 택시를 불러볼까.


‘드라이버가 도착하기까지 13분 남았습니다.’


점심은 포기한다.


12시 00분

카오소이(태국식 커리 국수)가 다 똑같은 카오소이지 그 집이라고 특별하겠어? 원래 미슐랭이랑 내 입맛은 잘 안 맞는다며 저 프랑스인들과 한국인인 내가 입맛이 같을 수가 없다며 미슐랭에서 별을 두 개나 받았다는 식당을 지나쳐 바로 카페로 향한다.


역시 나의 뛰어난 상황 판단력. 여행이란 자고로 예상치 못하게 우연이 발생하고 그 우연에서 추억이 생기는 것. 카오소이집을 가지 못한 덕분에 카페에서 오히려 카페에서 디저트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됐다. 이게 바로 여행자의 태도 아니겠는가!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고 예측가능했으면 여행을 굳이 올 필요도 없었을 거다.


점심시간이 30분이나 남은 12시. 그랩 드라이버는 요즘 치앙마이에서 뜬다는 카페 앞에 나를 내려주었다. 미소의 나라 태국에서 이깟 일로 미소를 잃지 말자. 오토바이 뒷 자리에서 내려 코쿤캅!을 외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12시 05분

주문을 받는 직원에게 이곳의 시그니처 음료를 추천받아 생전 처음보는 패션후르츠 커피와 망고 케익을 주문하고 앞으로 4시간 동안 오후 근무를 할 자리를 찾는다. 자리에 앉아 한 숨 돌리고 노트북을 열어 와이파이를 잡는다.


와이파이가 없다.


분명 구글 맵에서 봤을 때 노트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디지털 노마드가 일하기 좋은 코워킹플레이스라고 했는데. 와이파이가 없다. 구글 맵의 리뷰 사진에서 본 노트북을 하던 사람들은 다들 노트북으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미소를 잃지 말자. 미소의 나라 태국이니까.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카페에서 식은 땀을 흘리며 빠르게 구글 맵 어플을 켜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를 찾는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를 찾았다. 커피를 냉수 마시듯 입 안에 털어넣고 케이크를 세 번의 포크질로 빠르게 먹어치운다. 정성스레 커피를 추천해준 직원이 저 커피맛도 모르는, 사진이나 찍고 떠나는 관광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빠르게 카페를 나선다.


12시 20분

“Mr. JIn!”

“아, 쏘리”


커피를 주문할 때 이름을 뭍길래 한국이름을 말해주는데 내 발음이 좋지 않은지 계속 잘못 적어 이름의 마지막 글자인 ‘진’이라고 말해줬다. 저 ‘진’이 내 ‘진’인줄 모른채 멍하니 기다리다 직원이 직접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12시 30분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열고, 와이파이를 잡아 회사 VPN을 연결한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시계를 보니 12시 30분. 점심시간이 그렇게 끝났다.


12시 30분부터 바로 시작하는 짧은 미팅을 끝내고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도 일하는 외국인, 저기도 일하는 외국인이다. 치앙마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미국인은 한국인이 LA에서 북창동순부두를 먹는 거랑 비슷한 느낌일까. 미국인이 아니라 다행이야. 영어를 못해서 다행이야. 어딜가나 영어만 가득한 세계에서 미국인은 여행이 얼마나 단조로울까. 얼마나 편할까.


16시 40분

퇴근까지 20분. 오늘은 도이스텝 야간 투어를 신청한 날이다. 17시에 칼퇴를 하면 저녁을 먹고 18시까지 모임장소에 모여 버스를 타고 산을 오른다. 과거 란나 왕조의 왕들이 명상을 하러 갔다는 사원에 들러 란나 왕조와 태국인들의 불교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있다는 도이스텝 사원으로 이동해 야간 조명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사원과 치앙마이의 밤 풍경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대까지 보고 내려오는 일정이다.


비록 미슐랭 스타를 받은 식당에서 점심은 못 먹었지만, 일과시간에는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여행을 하는. 이게 바로 워케이션이지 하고 들뜬 마음으로 퇴근 준비를 하지만 역시나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시스템은 예상치 못하게 터진다. 예상치 못하는 게 아니라 꼭 퇴근시간에 맞춰서 터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바로 인공지능인가.


“수진님! 퇴근 시간 직전인데 죄송해요. 지금 데이터가 이상한데 잠깐 미팅 가능하실까요?”

“넵넵!”


여행 어플을 켜 예약한 투어의 취소 수수료를 확인한다. ‘당일 취소시 환불 불가’.


20시 00분

“수고하셨습니다.”


퇴근 버튼을 누르고 주위를 둘러보니 처음 왔을 때부터 일하고 있던 옆자리, 옆옆자리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모두 퇴근하고 나만 남았다. 유튜브를 켜 ‘치앙마이 도이수텝 야경’을 검색한다. 화질을 4K로 올리고 노트북 화면 가까이 얼굴을 대고 보면 실제로 보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5분만에 나홀로 투어를 마치고 스타벅스 치앙마이 님만해민점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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