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몸과 감정을 가진 독자들에게
문학은 삶에 도움이 된다. 가끔 감정이 본인보다 커지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도움이 된다. 외로움, 분노, 혼란과 같은 한 단어로 설명 가능한 감정뿐 아니라 ‘이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남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충동’, ‘내가 속한 도시에서 나 같은 사람들을 찾고 싶은 마음’ 같은 정체 모를 연결감까지 다룰 수 있는 지도이다. 이 지도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무도 우리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 문학이라는 지도와 감정적으로 엮여 있다.
문학을 읽는 방법은 제각기이다. 단숨에 읽으며 그 안에 감정을 두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고, 인물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내가 이런 인물을 찾았는데 아주 매력적이니 너도 한번 만나 보라고. 이 인물을 만나고 기분이 더 나아졌다고.
나는 문학 책을 이루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처음 보는 깊이의 감정, 언젠가는 이해하고 싶은 대사, 아름답고 정확한 묘사,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말들을 찾는다. 밑줄을 그으면 문장이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나를 설명하는 말, 나 대신 설명하는 문장들을 클립보드에 저장해 언젠가 꺼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무기가 되거나 나를 들여다보는 실마리가 될 수 있도록 모아 둔다. 가끔은 감정을 한 마디도 표현하지 않지만 감정을 전하는 문장들도 있다.
뭐든 잊히는 법이 없다. 잊히지 않고 이 세상의 지상이나 지하 어딘가에 쌓인다. 게다가 멈추는 법도 없으며, 그것이 문제다. 먼지 쌓인 폐허에서 일어나는 황금빛 바람처럼 자꾸만 밀려온다.
/ 올리비아 랭의 <<강으로>>에 나오는 문장이다. 발 밑에는 시간이 쌓여 있으며, 우리는 사건과 역사에서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그 사실은 안정과 연결감을 줄 수도 있고,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답답함을 느끼게도 할 수 있다.
밑줄을 긋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물들을 사랑하게 된다. 나와 같은 말을 하는 인물들을. 교집합으로 만나 차집합으로 눈을 돌려 결국은 내 안의 인물을, 인물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합집합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문학을 통해 인물의 마음에 들어가보았으므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사랑한 인물들의 합이다. 나는 <악어 노트>의 라즈이고, <등대로>의 릴리 브리스코이고, 스기마쓰 성서의 단서를 추적하는 주인공이다.
그래서 인물들과 함께하는 나는 읽을수록 강해지고, 나를 둘러싼 감정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된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니지만 위로가 되는 말, 등장인물의 입을 거쳐 선명해지고 증폭되는 감정들, 전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내미는 경험을 통해 나는 문학과 함께 존재한다.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이 문학 읽기를 더 즐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문학이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람에게 보조 바퀴를 하나 더 달아줌은 분명하다. 이야기를 읽고 치유되거나 이해받거나 공감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문학을 도구로 이용해 보기를 추천한다. 스쳐지나가는 작품을 잡아보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먹는 영혼의 음식처럼 감정별로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을 찾아두자. 미숙함에 관대해지고 싶을 때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아무도 용서하고 싶지 않을 때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읽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