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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Feb 01. 2024

결혼에 대한 가치관

유럽에서 살며 바뀐 점, 2020년의 끄적임

나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나 만 10년을 꽉 채워 대학교 졸업까지 있었다.

그래서 네덜란드 주재원 발령이 났을 때도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나라에 아무런 걱정 없이 쭐레쭐레 왔었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겠지 하면서 천하태평했다.


그런 내가 암스테르담 거주 초반에 가장 문화 충격을 받았던 점은 서/북유럽인들의 결혼관이었다. 

우리 회사에는 정말 다양한 국가 출신 직원들이 많은데,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혼관에 대한 내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내가 살던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쯤 되면 자연스럽게 만나던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문화고,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내가 나이 들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겠구나 라는 생각에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각주: 2020년 초에 작성하였던 글이라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결혼에 대한 인식이 현재보다는 훨씬 긍정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30대 중반이 넘어 싱글이 된 언니들이 힘들어하는 모습 보면 인간은 사랑을 나누고 살게끔 프로그램 되어있구나 라는 나의 생각은 그대로다.


서유럽과 북유럽 사람들은 동거 제도가 워낙 잘 되어있고 부모님 세대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이혼율이 매우 높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 제도에 대한 수요가 없다. 내 주변의 서/북유럽인이 포함된 커플의 경우 아래 세 가지 목적을 제외하면 결혼을 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1. 비 EU 파트너의 EU 국가 거주를 위한 비자 신청 2. 아이 출산 전 서류 간소화 3. 종교적인 신념


내 매니저만 해도 만 31세에 여자친구와 연애 기간이 10년이 넘었는데 결혼을 안 했었고, 5년이 지나 첫 아이가 출산한 이후에도 법적 파트너 관계만 유지 중이다. 처음엔 정말 너무 궁금해서 그렇게 오래 잘 만났고 둘 다 나이가 어린것도 아닌데 굳이 결혼을 안 할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니 오히려 나한테 결혼을 해야 되는 이유가 뭔데?라고 역질문이 들어왔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게 그에 대한 좋은 대답이 떠오르지 않던 것이었다. 왜냐면 난 지금껏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 번도 고민을 한 적이 없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내가 오픈 마인드인 편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결혼에 관해서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매니저는 차분하게 본인은 결혼 제도가 매우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결혼이 커플의 책임감 무게를 높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물론 법적인 파트너 관계를 정리하는 것보다 결혼 후 이혼이 물론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이긴 하지만, 그만큼 더더욱 굳이 결혼을 통해 법적인 구속을 추가하고 싶지 않다는 말도 했다. 본인은 결혼보다는 오히려 공동명의로 집을 사서 모기지를 다달이 붓는 것이 둘의 책임감을 높여준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난 곧 이 사람과 헤어져야지 라는 생각으로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진중하게 연애와 동거를 하면서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는 케이스를 봤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20대뿐만 아니라 50대 이상 중장년층에서도 꽤 흔하다. 한국 연예인들이 유럽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던 비긴어게인 프로그램에서 나이가 지긋한 커플이 손을 꼭 잡고 춤까지 추는 장면이 나오면 "나도 저렇게 노부부가 되서까지 알콩달콩하게 결혼생활을 하고 싶다"라는 댓글이 꼭 달리곤 한다. 하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그 둘은 몇십 년 부대끼며 산 노부부가 아니라 이전 파트너와 헤어지고 만난 지 몇 달 혹은 몇 년밖에 안된 파릇파릇한 설렘 가득 커플일 것이다


나는 이런 케이스들을 직접 보면서 결혼에 대한 내 가치관이 흔들려서 오랜 시간 혼란스러웠었는데 결혼의 테두리 밖에서도 사람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지를 보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결혼이란 하나의 사회제도고, 내가 어느 문화권에 사냐에 따라 필수로 느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집트 카이로에 남자친구랑 여행을 갔을 때 현지 가이드 분이 계속 우리를 남편과 아내라고 부르며 아기는 언제 가질 것이냐고 끈질기게 물어봤다. 그곳에선 부부가 아닌 연인끼리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개념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것이고, 가족과 아이가 행복의 잣대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결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에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는지, 그로 인해 내 삶이 행복한지이다.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당장 우리 어머니 세대만 봐도 그렇지 아니한가. 그리고 반대로 결혼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하고 안정감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점차 한국의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이혼이 지금처럼 터부시되지 않고 꼭꼭 숨겨야 할 비밀이나 약점이 아닌, 자연스럽게 꺼내놓고 어느 나이대에서나 건강한 연애를 충분히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언젠가는 사회가 자연스럽게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결혼이 단순히 사회적 압박 때문에 30대가 되면 불안해하며 주말마다 선을 보면서까지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사랑하는 삶의 동반인의 관계에서 맺을 수도 있고 맺지 않아도 되는 매듭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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