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보다 좋을 수도?
아는 언니를 따라 노르웨이 오슬로 2박 3일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나는 새로운 곳에 여행할 때 늘 이곳에 살고 있는 자신을 상상할 수 있는지 생각하며 다니는데, 네덜란드 정착 이후 처음으로 살만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든 도시를 찾았다.
1. 깔끔하고 세련된 건축물과 거주지 빌딩
다 쓰러져가는 암스테르담의 건물들은 고전적인 매력은 있지만 고층 건물이 없어 도심에 집을 구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비싸다. 높은 월세를 주고 집을 구해도 워낙 노후된 건물들이 많아 태풍이 오면 비가 새고 누수로 인한 곰팡이가 생기거나 난방 효율이 낮아 각종 유지 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
그에 반해 건축으로 유명한 노르웨이라 그런지 오슬로의 건물들은 전반적으로 매우 세련되었고 깔끔하다. 아파트 월세 금액은 암스테르담과 비슷한 편인데 대신 신식 건물 위주라 컨디션이 훨씬 좋아 입주 후 크게 스트레스받을 일이 생길 위험이 현저히 적다.
2. 도시 계획
오슬로는 암스테르담에 비해 인구가 적어 문화생활, 외식 문화, 쇼핑에서 상대적인 아쉬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이 모든 게 훌륭했다.
해외 관광객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노르웨이는 자국민들도 각종 문화생활에 높은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오슬로 패스를 구매하여 이틀간 열심히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봤는데 많은 노르웨이 사람들이 나와 함께 투어까지 참가하는 모습을 보았다.
외식 문화 역시 당연히 레스토랑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찾아간 식당들의 질이 전부 매우 만족스러웠으며 서버들이 굉장히 친절하였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식당 종업원들이 불친절하다 못하여 화가 나있나 싶은 경우가 잦아 손님인 내가 눈치 보며 주문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외식 가격의 경우 주류 가격이 매우 비싸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의 음식 가격은 암스테르담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살짝 낮은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오슬로에서 내가 방문한 레스토랑들은 손님들이 북적거리지 않아 편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이 부분도 장점으로 느껴졌다.
3. 가깝고 다양한 자연환경
산, 바다, 호수, 들판
이 모든 게 오슬로 중심지에서 이십여 분만 걸어가면 있다.
노르웨이는 하이킹을 하러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많을 정도로 각종 등산로가 유명하다. 또 오슬로 시내 주변에 벤치가 정말 많았는데 사람들이 자연을 충분히 만끽하고 휴식할 수 있는 무료 공간이 많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암스테르담도 자연을 즐기기에 좋지만 산이 없어 주말에 가볍게 등산하러 갈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4. 낮은 소득세
노르웨이는 선진국인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레벨의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소득세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아마 산유국이라 나라 재정이 탄탄해서 그런 것 같지만 자세히는 모르겠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의 2024년 기준 소득세를 비교해 보니 피눈물이 날 정도다.
물가 인덱스는 두 도시가 비슷한데 오슬로의 식료품 가격이 높은데 반해 암스테르담은 주거 비용과 임금이 더 높다.
네덜란드 소득세
€ 0 - € 75,518 구간: 36.97%
€ 75,518 초과: 49.50%
노르웨이 소득세
단순하게 10 NOK = 1 Euro로 환산하여 계산 시
€ 0 - € 20,805: 0%
€ 20,805 - € 29,285: 1.7%
€ 29,285 - € 67,000: 4%
€67,000 - € 93,790: 13.6%
€ 93,790 - € 135,000: 16.6%
€ 135,000 초과: 17.6%
5. 높은 치안
빠르게 늘어가는 난민과 이민자로 인해 여러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암스테르담에 비해 오슬로는 어딜 가도 금발에 파란 눈 바이킹 북유럽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바로 옆 국가인 스웨덴이 난민/이민자 문제로 할렘화가 진행되며 골치를 썩이는 중인데 노르웨이는 그렇지 않을까? 검색을 해보니 노르웨이는 인구가 적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며, 안정적인 경제를 기반으로 이민자들에게도 양질의 일자리와 임금을 제공하는 것이 주요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노르웨이 인구 5백만, 스웨덴 인구 천만) 물론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오슬로 여행 내내 매우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심지어 저녁 식사가 늦게 끝나 밤 10시가 넘어 숙소로 돌아갈 때도 불안감이 없었다. 아마 밤늦게도 해가 떠 있던 것도 한 몫한 듯싶다.
6. 스웨덴 남편의 편의성
내 남편은 스웨덴 사람이라 북유럽으로 이주하면 스웨덴과 가까워 가족 및 친지 방문이 편하고 문화적으로 적응이 매우 쉽다. 심지어 두 언어가 매우 유사하여 스웨덴 사람과 노르웨이 사람이 서로 자국 언어만 써도 업무가 가능할 정도로 소통이 원만하다. 예전에 스웨덴 회사에 출장을 갔다가 노르웨이 벤더 직원이 스웨덴 회사 직원들과 업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1. 내 필드의 취업시장
나한테는 가장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는데, 오슬로에는 게임/이스포츠 필드 회사가 없다. 외국인으로서는 비자 신청 등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지라 근무하고자 하는 회사의 규모도 매우 중요한데 아쉬운 사실이다. 그나마 다국적 IT 대기업은 사무실을 몇 개 보았지만, 지금은 계속 게임 산업 쪽에서 일하고 싶어 크게 관심이 없다.
2. 겨울, 겨울, 겨울
내가 방문한 5월의 오슬로는 매우 아름다웠고 해도 길었지만, 높은 위도에 위치한 북유럽 국가들은 겨울이 매우 음울하다. 암스테르담도 (52°) 서울보다 (38°) 위도가 높아 겨울이면 오후 4시부터 해가 지고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힘들다. 오슬로는 위도 60°로, 오후 3시부터 해가 진다.
오슬로 이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이 있다면 꼭 겨울에 재방문해보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3. 노숙자
오슬로에서는 하루에 두어 명 정도 노숙자를 보았다. 노숙자들이 위협적이지 않고 마약에 취해있지도 않아 보였으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여러 명의 노숙자들이 매트리스를 깔고 길바닥에서 잠드는 것보다는 현저히 적은 수여서 크게 걱정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암스테르담보다는 노숙자를 더 자주 보았고, 인구 밀도를 생각하면 유의미한 퍼센티지로 보였다.
4. 이민자가 적은 국가에서의 삶
위에서 난민/이민자 숫자가 적어 치안이 좋게 느껴졌다고 적었지만, 이는 한편으로는 이방인으로서 내가 적응하는 데에 그만큼 난관이 높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암스테르담은 동아시아 출신 거주자는 적지만 외국인 출신 거주자들이 많아 이들을 위한 각종 세금 혜택 및 시스템화가 잘 되어있다. 마찬가지로 오슬로 이주를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외국인으로서의 혜택이 어떤 게 있는지 꼼꼼히 찾아보고 공부해봐야 할 것 같다.
오슬로는 살기에 아주 매력적인 도시로 보이며, 네덜란드를 떠나 다른 유럽 국가로 이주 계획이 생긴다면 진지하게 고려해 볼 만한 곳 같다. 그동안 많은 유럽 도시를 방문하였는데 이만큼 마음에 드는 곳은 처음 찾아 매우 뜻깊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