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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리비 Sep 13. 2024

좋은 스트레스, 나쁜 스트레스

결혼과 상담 대학원 진학 모두 마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한 저는, 임신 시도도 늦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나이로 인한 난임 진단을 받았었습니다.


이때 주변 사람들이 한입 모아,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조언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남편과 가족들 모두 감사하게도, 합심하여 저에게 스트레스가 될만한 요소를 전부 제거해주었구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스트레스가 더 쌓이는 것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작은 일들도 갑자기 크게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하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주는 사람이든, 상황이든, 지나가는 캐나다 구스들까지도, 전부 화를 돋구는 것 같았고, 그럴 때마다 몸에 해가 될까 걱정에 시달렸었습니다.


이제 와서 써놓고 보니, 조금 우스꽝스럽긴 하네요. 하지만,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나쁘게만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켈리 맥고니걸 박사의 테드 강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McGonigal, 2013). 또한, 운동을 통해 우리 몸에 적당한 스트레스를 주어야만 몸이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과 같은 현상을 반취약성 (Anti-fragility)이라고 명명한 나심 탈렙의 책도 보게 되었습니다 (Taleb, 2014). 이렇듯,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나쁠 때도 있지만, 항상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우선 제가 생각하는 나쁜 스트레스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한다는 것은 내가 그 일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타인입니다. 타인의 시선, 타인의 평가, 타인의 반응, 타인의 언행. 이 모두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인데, 우리는 흔히 타인의 의도와는 달리, 그들의 반응이나 언행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여 나 자신을 괴롭힙니다.


예를 들어, 타인이 내가 모는 차를 보고, 나의 경제력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겠죠. 그 사람은 차종으로 사람의 경제력을 가늠하는 습성이 있는 거고, 나의 경제적 상황이 궁금했을 겁니다. 그런데 내가 그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그 사람의 평가가 나의 사회적 지위, 혹은 나의 성공 여부, 혹은 나라는 인간 자체의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말장난 같을 수도 있지만, 타인의 언행으로 상처를 받았다면, 나의 마음 속 어딘가에 결핍이 있기 때문이고, 그 결핍을 알아차리고 채워나갈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만 있는 겁니다.


둘째는 스트레스에 대한 스트레스입니다. 이것도 생각해보면 첫째 경우의 연장선이라고 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행복과 함께 스트레스와 고통이 패키지 딜로 함께 주어지거든요. 그런데 제가 난임 치료를 시작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 삶이 행복하고 정상적인 삶이라고 스스로 가정한 사람이라면, 작은 스트레스조차도 어마어마한 시련처럼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가 좋을 수도 있는 걸까요. 스트레스 받으면 암 걸린다는데, 오히려 암 예방을 해주는 좋은 스트레스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째는 내 몸을 건강하고 탄탄하게 해주는, 내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스트레스입니다. 나심 탈렙은 기계와 인간이 다른 점은, 기계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모되지만, 인간은 적당한 스트레스가 없으면 오히려 건강이 악화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무작정 편리한 것만 추구하기보다는, 때로는 선택적으로, 차를 두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걷거나, 엘리베이터를 두고 계단을 사용하기 등,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는 모든 운동은 좋은 스트레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장 기분 좋아지는 자극적인 음식이 아닌 건강식을 챙겨 먹는 것, 간헐적 단식을 하는 것도 좋은 스트레스에 해당되지 않나 싶습니다.


둘째는 내 마음을 건강하고 탄탄하게 해주는, 감정적 스트레스입니다. 심리 상담 직업 특성상, 저는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에 특히 주목합니다. 가끔, 지인들 중에, 심리 상담을 무작정 하소연하고 위로 받으러 오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심리 상담을 오히려 마음을 단련하는 헬스장처럼 이용하는 것이 상담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신 분이라면 응급처치부터 해야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음의 근력을 온전히 활용하지 않고 계시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이 온 마음을 쓰나미처럼 덮치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물결치는 감정을 스스로 관찰하고, 향유하고, 행동을 조율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감정이 나의 주인이 되는 대신, 내가 감정을 모두 담고도 남을 만한 그릇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인 거죠. 심리 상담을 통해 내 감정의 스펙트럼을 온전히 향유할 만큼 마음의 근력이 강해졌을 때, 우리는 세상의 풍파에 힘있게 맞설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내 삶을 더욱 충만하게 해주는 선택들을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려면 스트레스, 그리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나쁘게만 생각하는 관점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더욱 탄탄히 다져줄 감정 스트레스를 선택해서 겪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연애나 결혼 생활 속에서 부부 간에 갈등을 겪어보기도 하고, 원하던 직장에 지원했다가 떨어져 보기도 하고, 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당장은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일들이 하나하나 아물면서, 나의 마음이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거든요.


저 또한 난임치료를 하면서부터 스트레스를 모두 피하려하기 보다는,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스트레스는 기꺼이 감당하려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브런치 글을 발행하려는, 그런 좋은 스트레스처럼요. 그리고 캐나다 구스가 저를 위협하면,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버럭이 캐릭터를 생각하며, 스스로 잘 타일러 보려 합니다.




연습 1. 타인의 평가, 반응, 언행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그 사람의 의도와 내가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를 구분해보기. 예를 들어,  


연습 2. 내가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에서 패턴이 보인다면, 나에게는 어떤 결핍이 있는지, 그리고 그 결핍을 스스로 채울 방법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참고. 

McGonigal, K. (2013, June). How to make stress your friend [Video]. TED Conferences. https://www.ted.com/talks/kelly_mcgonigal_how_to_make_stress_your_friend?subtitle=en


Taleb, N. N. (2014). Antifragile: Things that gain from disorder. Random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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