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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리비 Aug 30. 2024

내 마음에 주파수 맞추기

상담을 찾으시는 분들 중,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서 괴롭다, 감정을 내 마음대로 통제했으면 좋겠다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감정이라는게, 통제하려 들면 들수록, 오히려 증폭되기도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애를 쓰면 쓸수록, 내 감정은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또 치솟았다가, 다시 또 새로운 저점을 향해 추락하기도 하죠.


저는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지하수 같은 의식의 흐름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외부의 풍파와는 관계 없는.


아이가 처음 태어나 세상에 나를 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 전까지는, 이 의식의 흐름에 몸을 온전히 맡깁니다. 아이는 관심이 가는대로, 몸이 가는대로, 울다 웃다, 먹다가 자다가. 좋은 부모라면 아이의 의식의 흐름을 거울처럼 비추어주기도 하고 적당한 선에서는 보호막을 쳐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서 아이는 안정을 찾습니다.


애착 이론에서 말하는 자기 사랑의 핵심은 억지 자기 긍정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인식 (Attunement)입니다 (Priebe, 2022). 좋은 부모가 아이의 의식을 통제하려 들기보다는, 그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주듯, 어른이 된 나도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때, 나는 비로소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매순간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기분이 좋든 나쁘든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시선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감정을 호기심과 따뜻한 관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감정은 나 자신과 소통하는 언어가 됩니다. 기분 나쁜 감정은 몸에서부터 시작하여, 머리로 신호를 전달합니다. 내게 필요한 무엇인가가 지금 없다구요. 그 신호를 묵살하려 애쓰기보다는, 내게 필요한 그 무언가를 찾아다 주는게 나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모두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항상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사람은, 아주 이상한 사람인거고, 원래는 기분 나쁨과 기분 좋음이 적당히 교차해야 건강한 겁니다. 우리 신경계는 자동차의 엑셀과 같은 교감 신경과 브레이크와 같은 부교감 신경이 번갈아 작동하며 감정이 자동으로 조절합니다:


평온한 상태에서의 자기 조절의 창


 하지만 트라우마를 겪었거나,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좁아집니다:


트라우마, 만성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의 자기 조절의 창


이 영역을 자기 조절의 창 (Window of tolerance)이라고 부르는데 (Van Der Kolk, 2015), 이 창이 좁아진 상태에서는 작은 스트레스에도 금새 신경 과자극 상태가 되어 극도로 불안해지거나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혹은 오랜 기간 무기력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기 인식을 통해 자기 조절의 창이 어느 정도 좁아져 있는 상태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내가 창의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을 인식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일상 속에서 자주 오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자꾸만 창 밖으로 벗어나고 있다면, 자기 조절의 창이 좁아져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럴 때는, 자기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기 보다는, 자기 조절의 창을 넓힐 수 있는 몇 가지 근본적인 대책을 활용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첫째는 신경계의 조절 능력을 향상시키는 겁니다. 나의 현재 체력에서 약간만 숨이 가빠지는 정도의 적당한 운동은 신경계의 자기 조절 능력을 회복시켜 줍니다. 고강도 운동을 한다고 빨리 회복되는 건 아니니 절대로 과격한 운동을 하지는 마세요. 언제나 자기 인식의 자세를 견지하며, 나의 몸 상태를 체크해가며, 적당한 운동이면 충분합니다.


심호흡 또한 간단하지만 아주 좋은 하나의 방안입니다. 우리는 들숨에서는 교감 신경을, 날숨에서는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 시킵니다. 이렇게 각 신경계를 차례로, 의식적으로 운동시켜주는 것이 바로 심호흡입니다.


둘째는 나의 생각을 점검하는 겁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다지만, 내 머릿속에서 내가 나에게 퍼붓는 비난은, 조금 힘든 언덕을 넘을 수 없는 산으로 키웁니다. 면접에서 다섯 번 떨어진 건 있는 그대로, 면접에서 다섯 번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평생 무직으로 살 거라는 과한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말이죠. 나의 생각을 점검하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은 명상을 통해 나의 의식의 흐름을 한발 떨어져 관찰하거나, 혹은 일기를 통해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감정을 완결 짓는 일입니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도 볼수 있듯이 우리 감정은 모두 자기만의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정을 통제하려고만 드는 사람은 임무를 완수하려는 감정을 자꾸만 무의식 속에 파묻으려고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감정이 생기면, 그 감정이 내 몸과 의식을 무사히 통과하여, 그 임무를 완수하도록 해주는 것이 자기 인식의 자세입니다. 울고 싶은 감정이 들면 슬픈 음악을 들으며 울게 해주고, 화가 나면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속이 후련하게 소리를 칠 수도 있겠네요. 이 감정이 내게 전달하고자 하는 깊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감정 또한 나의 손이나 발처럼, 소중한 나의 일부입니다. 성가신 걸림돌이 아닌, 나를 살아 숨쉬게 해주는 감정과의 관계를 자기 인식을 통해 재정립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연습 1. 나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는 나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30분간 자유롭게 일기 형식으로 써보기. 생산적이지 않은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대체로 그런 나의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이나요? 아니면 긍정적인 감정이 이나요?


연습 2. 내가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도 된다는 '허락'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어떤 대화가 이루어져야 하나요?




참고.

Priebe, H. (2022, March 8). Learning self-regulation through self-attunement [Video].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TplLHhDRqAQ


Van Der Kolk, V. (2015). The body keeps the score: Brain, mind, and body in the healing of trauma. Pengui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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