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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리비 Oct 17. 2023

불편한 순간을 견디는 능력

불안정 애착에서 안정 애착으로 가는 길은 불편합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듯 보이는데, 유독 나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외줄타기보다도 어렵게 느껴지고 줄에서 떨어져 뒹굴기도 여러번, 지치기도 합니다. 마음의 허기는 그대로인데, 그나마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달랠 방법을 익혀 나가거나, 불만족스러운 관계에 억지로 만족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우리의 감정은 나와 타인에 대한 아주 중요한, 고급 정보를 머금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정 애착 유형의 사람은 감정의 언어에 대한 해독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 자체를 막연한 불편함으로 경험합니다. 감정을 수월하게 소화하려면, 그 감정을 설명해줄, 납득이 가는,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를 완성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뇌구조 상,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먼저 일어나고, 그 감정에 대한 이성적인 의미 부여가 되면, 그 이후부터는 그 감정에 대한 완급 조절이나 감정이 전달하려는 정보를 기반으로 한 적절한 행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불안정 애착 유형의 사람들은 의미 부여를 하기 전에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감정을 회피하기 위한 2차 전략으로 빠져 버립니다.


이런 감정의 언어에 능숙한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것은 신기하면서도 편안한 일입니다. 이들은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부터 이 감정이 들기 시작했고, 그 감정은 왜 생겨난 것이며, 상대방은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 것이고, 지금 현재 자신은 어떤 상태이며, 앞으로 이러저러하게 대처해야겠다는, 듣는 사람도 속이 후련한 서술이 가능하더라구요. 그렇다고 그 감정이 아무렇지 않거나 하지는 않아요. 힘든 건 힘든건데, 자신이 왜 지금 힘든지에 대한, 납득이 가능한 서술을 하기 때문에 그 상황을 자신이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는 것 뿐입니다.


반면, 감정의 언어에 서툰 사람들은 막연한 감정들에 휘둘립니다. 그냥 이유 없이 짜증이 난다거나 피곤하다든가,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왠지 거슬리거나 그냥 화가 난다던가. 어떤 경우에는 아주 거창한 설명들을 들여오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과 같은. 그리고 자꾸 무언가를 하려고만 합니다.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일에 몰두하거나, 화풀이를 하거나, 당장 그 사람에게 연락하거나.


불안정 애착에서 안정 애착으로 가려면 그 안개속 같은 불편한 감정을 우선 있는 그대로 견디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견디는 힘이 길러지면, 그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궁금증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메타 인지가 가능해집니다. 이때, 그 불편한 순간들을 견디기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입니다.


불안정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은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 보면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어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나 자신에게 혼자 그 책임을 전부 스스로 뒤집어 씌우는 그 순간을요. 뱃속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고, "내가 하는 게 다 그래.."류의 독백과 함께 말이죠. 간혹 누군가 칭찬을 하거나 호의를 보이며 다가왔을 때도 막연하게 불편하고 숨고 싶은 순간이 있기도 하구요. 그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화살을 일단 나 자신에게 돌리고 보는, 어찌 보면 자동 반응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불안정 애착에서 안정 애착으로 가려면 그 순간을 견뎌야 합니다. 내가 지금 불편한 이유가 "내가 원래 그런 문제투성이 사람이라서"라고 쉽게 결론을 지어버리면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의 진짜 의중에 대해 들여다볼 겨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관심은 이미 온통 나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듯 보이지만, 나 자신을 평소에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두면, 그런 불편한 순간이 왔을 때 그 책임을 바로 혼자 다 뒤집어 쓰지 않고, 그 원인을 훨씬 다양한 곳에서 찾을 수 있는 머리 속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잘하는 것, 평소에 주변 사람들이 칭찬해주는 것이 있다면 어딘가에 적어두고 종종 찾아보는 것도 좋구요. 혹은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대화에 자세히 귀를 기울여보고, 나의 친구에게 그대로 해줘도 될만큼 나 자신에게도, 살가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있는지도 한번 점검해보시구요. 평소에 내가 특히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내가 목표했다가 성취했던 것들을 주기적으로 떠올려보기도 하구요. 한국인들 특성상 누군가가 대신 칭찬해줄 때까지 스스로 그런 칭찬하는 것을 매우 낯 간지러워 합니다. 반면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아주 큰 소리로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자기는 뭐뭐뭐 잘한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는거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더군요.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스스로 현실적이고 어른스럽다는 착각은 특히 위험해 보입니다. 자신에게 친절하고 공정하게 대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감정과 소통하는데 막힘이 없습니다. 나 자신과 잘 한번 편 먹고, 불편한 순간들을 피하기보다는 자원으로 활용하는 법을 익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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