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는 것들에 대하여
꿈은 종종 지워진다.
깨고 나면, 분명 장면이 있었는데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아버지의 방, 끓어오르던 바닥, 사라진 신발, 수박 속 벌레들…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일렁이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사라지길 반복한다.
꿈은 꿈이라지만 현실에 와서도 반복된다.
말하지 않은 감정, 참아낸 갈등, 부딪치지 않기 위해 삼킨 회피—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마치 없었던 것처럼 지워진다.
하지만 지워졌다고 해서, 없어진 건 아니다.
그건 단지 표면에서 사라졌을 뿐,
내면 가장 깊은 곳에 레이어처럼 곁겨이 눌러앉아 있다.
나는 요즘, 지우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
갈등과 거리, 그리고 그리움에 나 자신을 향한 실망까지.
지우고 또 지우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은 지워진 것들로만 채워진 공간이 된다.
문득, 지워진다는 건, 기억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다시 꺼내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워진 꿈 속에서,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찾고 있었고
지워진 말들 속에서, 나는 여전히 사랑을 건네고 있었으며
지워진 감정들 속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불씨 하나쯤은 남아 있기 때문일까...
Erasing.
그건 끝이 아니라,
다시 쓰기 위한 여백이다.
“아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