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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주린이의 차트 여행

매일매일 투자일지를 쓰며...

by 칠렐레팔렐레

은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내게 쉼과 자유를 의미했지만, 막상 그 시기를 맞이하고 보니 하루가 길고 무력감은 깊었다. 아침에 눈을 떠도 특별히 할 일이 없고, 저녁이 되어도 성취감은 없었다. 텃밭에 나가 흙을 만지며 상추와 고추를 가꾸고, 손주들이 놀러 오면 작은 나무 조각으로 장난감을 만들어주며 웃음을 나누었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고요한 시간이 찾아왔다.


우연히 알고리즘이 이끄는 영상 속 증권투자를 보고 묻어 두었던 계좌를 열어 봤다. 재직시절 돈이 된다는 말에 사 두었던 주식들은 거의 반토막이 나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혹시 주식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근거 없는 자신감, 이른바 근자감이었지만 그 작은 불씨가 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했다.


처음 1년은 그야말로 부딪쳐보는 시간이었다. 스켈핑, 단타, 스윙, 종가배팅, 돌파, 눌림목… 이름만 들어도 정신없는 전략들을 다 시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세운 단 하나의 원칙은 분명했다. 무리하지 말자. 잃지 않는 주식을 하자.


예수금은 2,500만 원에서 5,000만 원 사이를 오갔으며, 나는 매일매일 엑셀 파일로 매매일지를 썼다. 실패한 날은 반성했고, 성공한 날은 원인을 분석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기록은 나만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리고 2년 차 주린이가 된 지금, 2025년이 한 달 남은 시점에서 정산을 해보니 누적 수익은 1,400만 원. 반토막 났던 과거를 생각하면 이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삶의 에너지를 되찾은 증거다. 수익이 났을 때는 아내가 “생활비 좀 달라”며 농담을 건넸고, 손실을 봤을 때는 “그럴 줄 알았다”는 핀잔을 했지만 웃음으로 넘겼다. 그 모든 순간이 내 삶을 다시 뜨겁게 만들었다.


주식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시장을 바라보며 긴장하고, 매매일지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나를 다시 살아있게 했다. 텃밭의 흙과 손주들의 웃음, 그리고 차트 위의 숫자들이 어우러져 은퇴 후의 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했다.


나는 이제 2년 차 주린이다. 아직 배울 게 많고, 실수도 많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은퇴 후에도 삶은 다시 뜨거워질 수 있다. 나에게 그 불씨가 되어준 것은 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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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씨앗이 깨어나듯,

차트 위의 숫자도 다시 살아난다.

무력했던 날들 위로,

나는 오늘도 작은 불씨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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