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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tine sk Mardres Nov 08. 2023

#15 20231108

어쩌다 샌디에이고 Ep. 2

     미국 샌디에이고가 항구란 것은 샌디에이고 오고야 실감했다. 숙소에서 걸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빽빽하게 정박해 있는 요트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선상에 헬리콥터나 수상기 같은 작은 비행기까지 구비한 엄청나게 부내 나는 요트들을 시큰둥함을 가장한 눈으로 훑다 보니 산책로 군데군데 널브러진 약물중독자들과 남루한 노숙자들도 한 시야에 담겼다.


 빈부격차와 자본주의 명암을 살벌하게 보여주는 미국 도시, 샌디에이고에서의 둘째 날은 발바닥이 얼얼하도록 엄청나게 걸어 다녔다. 잠시 쉴 겸 벤치에 앉은 김에 지인이 정성껏 준비해 준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어 과즙이 터지면서 입술 한쪽으로 주르륵 흐르는데 하필 조각 몸매 조깅남이 지나가는 바람에 상황이 우습게 됐다.  정말 해명하고 싶은 순간이 이런 거구나 싶지만 상황은 이미 종료되었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잘 나왔을 때 정말 기분이 좋기에 다른 이들도 그 즐거운 기분을 가져갔으면 하는 마음에 종종 다른 여행자들에게 한국인의 장인정신을 보여준다. 쪼그려 앉기와 포즈 설정 훈수질까지 하며 함박웃음을 선사하는 건 나의 은근한 즐거움이다. 그렇게 몇 번 남의 사진 찍어 주며 걷다 보니 어느덧 USS 미드웨이 박물관 항공모함 앞이었다. 거기 유명한 수병과 간호사 동상 앞에서 젊은 남녀 한쌍이 나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감히 내가 포즈를 지시하기도 전에, 남성분이 갑자기 여성분의 허리를 잡고 수병과 간호사 포즈를 재현해 버렸다. 순간 놀라서 너무 버튼을 오래 눌러 버렸더니 연사 버튼이 활성화되어 여성분이 파드닥거리다가 거의 넘어질 뻔하며 엄청나게 생동감 있는 사진까지 포함해서 한 서른 장 찍어 버렸다. 서른 장 중에 마음에 드는 게 한 두 장쯤은 꼭 나왔으면 좋겠다.


계속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 보니 정말 어른들을 위한 테마파크 같은 동화 속 같지만 현실 속 돈증발 빌리지, 시포트 빌리지였다.  나는 놀러 왔소 광고하며 이렇게 헤벌레 사방팔방 사진 찍고 셀카 찍고 난리부르스를 떨어도 흉볼 사람 없다. 다들 바다를 뒤로 하고 전깃줄 참새처럼 다닥다닥 붙어 셀카를 찍고 있는 사이 나하나 더 보탰다. 어느 잡지에서 본 듯 한 멋들어진 테라스 레스토랑들의 메뉴가 밖에도 있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가격이 이 정도이니 들어올 테면 들어오던가 아니면 알아서 거르라는 신호를 잘 알아듣고 잘 피해 갔다. 혼자라서 덜 청승스러웠다. 웬만한 메뉴가 2인분부터 시작되는데 당연히 기본 100달러 이상이 대부분이었다.  여비로 챙겨간 캐나다 달러 300달러는 미국 달러로 환전하자 200달러로 줄었다. 벼룩의 간은 인정 사정없이 파 먹히고 있었다. 혼자라서 먹기가 곤란하군이라는 표정으로 메뉴를 쓰읍 훑어보며 생소한 생선 이름을 구글로 찾아봤다.


돌아다니며 계속 과일을 먹어댔더니 딱히 배가 고픈 느낌은 없었지만 저녁 무렵 일을 끝낸 지인과 숙소 근처 해피아워 생맥주를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지인의 친언니가 운전을 하기로 해서 이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이탈리안 타운, 리틀 이탤리에서 한국인 셋이 일본식 라멘과 중국 만두 바오를 먹는 여행의 즐거움을 같이 누렸다. 그나저나 중국 만두 바오의 비주얼이 참으로 희한했는데 만두피를 두껍지만 살짝 넓게 펴서 만두피의 정체성은 살리고 모양은 타코처럼 미국인에게 친근하게 바꿔놨다. 기름 붙은 쫀득하고 두꺼운 삼겹살이 간장과 호이신 소스에 윤기 촤르륵 흐르게 졸여져, 토핑으로 올라간 고수와 잘 어울렸다. 만두 두 개에 만오천 원이라 생각하면 속이 아려 왔지만 타 문화권의 음식이 이민자들의 기지와 현지인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서로의 입맛을 길들이며 토착화되는 과정을 잠깐 들여다보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


하루종일 걸어서 갈 수 있는 관광지는 다 돌아다닌 덕분에 미리 숙제를 끝낸 기분이 들었다. 이제서야  하이킹, 트래킹, 비치범 놀이를 시작할 수 있어 더 설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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