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들과 무겁게 위스키 세 잔만 마시고, 역시 내일도 - 토요일 출근해야 하기에 먼저 자리를 부자연스럽게 비웠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으로부터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는데, 어젯밤의 일이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관계를 의심하게 되는 요즘이었다. 한데 뿌듯함은 무엇이었을까. 스무 살 첫 월급을 타고 새신을 신었다. 결코 그때의 기분과는 같지 않았다. 가까이 마주할수록 우리들의 관계가 틀리지 않았음을 괜스레 알아차렸던 것인가. 내 나이는 고독해지고 생각을 좁게 그리고 깊이 있게 만든다. 어젯밤의 일 이후로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길수록 관계가 아닌 나이를 탓하는 게 맞는 요즘이라고 수정할 테다.
관계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새로운 사람들은 나를 - 이를테면, 누리호 혹은 아리랑으로 여기는 것이다 -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성장시킨다. 우리들 - 고향 친구들은 어떠한가. 발사에 실패하고 기죽어 있는 나에게 서해안 밤하늘의 아름다운 폭죽 축제를 연상시킨다고 할 놈들이고, 축제는 끝이 나면 폭죽과도 같은 박수갈채라도 받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며 혀도 차주는 놈들이다.
나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사고할 즈음 그러니까, 어젯밤에 우리들과 무겁게 위스키를 마셨다. 괜스레 그리고 잠시나마 우리들을 의심했던 나를 위해 손가락질하며 욕을 퍼부었다. 우리들은 가깝지만 안아주기엔 소름 돋는 사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살아갈 즈음 나의 어젯밤처럼 직접 만날 수 없다면 차라리 부재중 전화 한 통은 아름답다.
그것은 추억 여행을 떠나게 할 테다. 끊었던 담배를 물곤 도토리 키를 재며 티격태격하던 날로, 커다란 바퀴와 바구니를 매달고 등교하던 여학생을 나만 좋아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챈 날로 말이다. 그것은 이러한 상상을 선물한다. 전화를 받았다면 유난스럽게 왜 그러냐는 식 혹은 오글거린다고 치부할 텐데, 그것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너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낄 테다. 우리들의 관계가 틀리지 않았음을 알아차릴 테지.
p.s
한 통이어야 한다. 두 통, 세 통은 정말 소름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