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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 2

by 유현우

사고야 말았다. 커피? 땡. 책? 땡. 레코드? 하. 정답이다. 닷새 전 즈음 유튜브 영상을 보았는데, 제목은 가물가물하다 못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쓰읍.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스쳐가는 말임은 분명하다. 빨간 뿔테안경이 역시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스쳐가는 말의 형태는 ‘사물을 좋아한다고 말을 하기 전엔 반드시 사물을 향한 물리적 소비(시간 혹은 돈)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나는 책을 좋아합니다,라고 말을 했다면 누군가 나의 행방을 추적했을 때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간다거나 내 방구석 책꽂이에 적어도 책의 형태를 한 사물이 꽂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행위 또한 나는 사물을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를 밝혀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옳다,라고 대답하라며 가슴에서 외친다. 왜냐하면 나름의 ‘소비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 공식이라 함은 구매결정의사과정 마지막 관문 [최종 구매] 단계에서 쓰인다. 구매를 확정하기로 마음먹기 바로 직전! 당월 해당 사물에 대한 예산이 초과한 상태임을 인지한 나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카테고리(예를 들어 내겐 커피, 책, 레코드가 있겠다)의 예산표를 확인하고 약간의 안도감과 함께 충동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또 사고야 말았다.

말하자면 레코드를 충동구매하고 싶다면 이번 달은 커피나 책의 소비를 줄여보자는 것이다. 사실 좋아한다기보다 미친 게 확실함을 세상에 밝히고자 끄적이었던 게다. 내일도 어김없이 레코드를 들으며 커피를 내리고 카뮈의 [페스트] 마저 읽어내겠다. 뿅. 내일이 되었다. 한가로운 오후 세시다. 오후 세시는 커피를 마셔도 잠이 깨질 않는 그러나 커피가 담긴 잔은 깰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사로잡히는 시간이다. 또한 우리집 단골 원영님과 사사로운 대화를 나누며 부단히 잠을 깨려고 노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갑자기 이틀 전 온라인으로 충동 구매했던 레코드 두 장이 도착했다. 잠은 금세 달아난다.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두마디에 가속이 붙기 시작한다.


비브라포니스트 바비 허처슨의 [Wating] 그리고 소프라노 색소포니스트 럭키 톰슨의 [Goodbye Yesterday]. 바비 허처슨의 앨범은 눈에 보였다하면 구매욕을 불태운다. 그의 비브라폰 연주는 강한 리듬감이 빗발치는 하드밥과 가볍게 툭 던지며 귀를 살랑이는 이지 리스닝 재즈곡 사이에서 머물러 있다. 그는 재즈계의 위자드다. 레코드를 위에 올려 놓는 순간, 두 손에 쥐어진 말렛(mallet)으로 오후 세시를 불면의 시간으로 만든다. 차분해지자. 흥분된 오감을 가라앉히자. 럭키 톰슨 도와줘! 몽환적이다. 이슬 가득 맺힌 나뭇잎들의 집합 혹은 댐, 강 주변 물안개가 자욱한 잿빛 거리 위에 놓여있다. 그의 소리는 나뭇잎 사이에 비치는 일렁이는 햇살이다. 그의 소리는 안개를 흩어 없애고 맑게 개도록 하늬라.


https://youtu.be/ynjO6tEbvhg?feature=shared


https://youtu.be/a79jCq1aw1s?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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