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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도경편]

by 유현우

2025년 9월 20일 토요일 시계 바늘은 오후 11시 20분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도경군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닭목살, 한치구이, 은행꼬지 그리고 아사이 맥주도 참석했습니다. 참고로 이 만남의 목적은 단순히 친구와의 가벼운 술 한잔인데요. 우리는 지금부터 약 2년 후까지 대면할 수 없는 사이가 됩니다. 무겁게도 느껴질 수 있습니다. 도경은 지금으로부터 2년 후까지 런던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기로 합니다.


도경은 어떤 사람일까요. 꼬지 손잡이 방향이 전부 제 몸쪽으로 향한 사진에서 알 수 있겠네요. 도경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구두를 수선하고 제작합니다. 도경은 무엇을 위해 런던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갈까요. 전문성이 필요한 듯 합니다. 도경은 흥분한 적이 있을까요. 종종 있습니다. 언제 흥분하던가요. 구두에 관하여 떠드는 것 외에 평온해 보였습니다. 도경은 버티어 낼 수 있을까요 이방인으로서. 때론 버티는 게 답입니다를 실천했기에 가는 것입니다.


핸드폰 시계가 오전 1시 39분에서 40분으로 변합니다. 도경과 기억의 왜곡에 관하여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왜곡은 명백히 시간에 의해서 변질됨을 인정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나빴던 기억들은 야속하게 희미해져만 가고 좋게 왜곡됨을요. 우리는 오늘 일과 사랑에서 왜곡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일과 사랑은 혼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으레 상대가 존재해야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일과 사랑에서 나빴던 기억은 후회, 아쉬움을 동반해 좋게 착각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를 알기에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다짐합니다.


시계 바늘은 어느새 오전 세 시를 가르킵니다. 도경은 하품을 쩌억 합니다. 가자는 뜻이겠지요. 그렇게 참석했던 꼬지와 맥주를 보내고 우리는 잘 다녀오라는 말을 나눈 뒤 헤어집니다. 집으로 향하는 도경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봅니다. 주머니 속 핸드폰을 바로 꺼내어 바라보더군요. 내심 사진 찍고 가자는 말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갑니다 도경은. 뒷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2년 간의 행보는 이별이 아닌 그냥 이렇게 사는 것임을 일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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