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마음에 꽂힌 책엽에 붙이어 놓는다. 그는 먼 훗날 붙이어 놓았던 나를 위해 고요히 기다린다. 나는 불현듯 그날의 나를 생각한다. 그는 곰곰이 반추하는 나를 위해 고개 내밀고 기다린다. 나는 그를 찾아내고, 떼어내고, 구기고, 버리어 낸다. 그는 고요히 기다렸다. 마침내 떼어졌고, 구겨졌고, 버려졌다. 그는 언젠가 갈피 잃은 나를 볼 것이다. 나는 날 저무는 겨울날 새하얀 산정에서 유독 초록 빛나는 소나무 한 그루를 꼬집어 내듯 그를 생각한다. 그는 여전히 고개 내밀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김없이 그를 버리어 낼 것이다. 그는 하염없이 나에게 버리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