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2학년 1학기
팬데믹 때 널싱과에 임시 휴학계를 냈으니, 다시 2학년 1학기부터 시작. 아직은 마스크를 써야 하고, 실내에서 음식 섭취는 안 되는 규칙하에 학교가 문을 열었다. 아이의 학교도 문을 열고 마스크를 쓰고 등교를 하였다. 아이는 킨더과정을 온라인으로 듣고 처음 가는 학교라서 좋았나 보다. 주변의 모든 공부하는 엄마들의 공통된 소원이 “부디 아프지 말자. 특히 시험기간에 아프지 말자.”인데,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꼭 시험기간에 맞춰 아프곤 한다. 게다가 미국은 왜 이렇게 쉬는 날이 많은지…. 그나마 가을학기라서 눈 때문에 문을 닫진 않지만, 휴일이 너무 많았다. 가족도 친척도 없는 우리 부부는 아이의 등하교와 비상시를 대비해야만 했다. 그런데 정말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정기적으로 베이비 시터를 쓰지 않는 한, 급하게 쓰는 건 거의 힘드니 말이다. 아이 학교가 9시에 스쿨버스를 타면 4:30에 하교하는데, 남편과 나는 둘 다 학교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몸이라 회사와 달리 시간을 유연하게 쓰질 못하였다. 그래서 늘 시간표가 나오기 전, 가슴을 부여잡고 확인을 하게 된다. 다행히 이번 학기는 오픈이지만 온라인도 섞여서 번갈아 가면서 아이를 등하교시킬 수 있었다. 아직 코비드가 기승이라 액티비티는 따로 시키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차라리 아이가 프리 스쿨에 있을 때는 학교에서 애프터 스쿨을 해서 더 봐줬는데, 주변 지인들과 친구들은 아직 팬데믹 기간이라 그러니 더 지켜보자고 한다.
여하튼, 내 아이도, 남편도, 나도 모두들 드디어 back to the school!
우리 학교 널싱과는 프리 널싱에서 선택된, 어림잡아 80명 정도 되는 학생을 두 개의 반으로 나누어 2학년을 시작한다. (* 이건 학교마다 다른 것 같다. 어떤 학교는 프리 널싱 후, 시험을 쳐서 뽑는 학교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 학교는 지원자들 중 성적순으로 뽑는 기준을 정한 듯.) 한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미국의 널싱과도 한국의 널싱과 처럼 과에서 과목을 미리 배정한 시간표를 주고 널싱 학생들은 자의로 바꿀 수 없다.
프리 널싱까지는 과학과목이 위주라서 영어를 잘 못해도, 이해가 좀 떨어져도 혼자서 공부해서 시험을 잘 보면 성적이 잘 나왔지만 간호 본과는 달랐다. 뭐랄까, 한국의 고 3처럼 공부할 사람이 아니면 다 떨어뜨리겠다는 각오로 학생들을 마구 몰아치며 시험도 대단히 어렵게 출제한다. 프리널싱에서 평균 학점을 B정도 받았다면, 본과에서는 과락을 면하기 쉽지 않은 정도였다. 게다가 첫 과목은 기본 환자의 바이탈 사인과 피지컬 체크인데, 이 부분이 나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미국의 간호사들은 기본적으로 청진기를 늘 소지하며 환자의 폐와 심장 소리를 수시로 체크해야만 한다. 그래서 심장 잡음이 들리는지, 들리면 어떤 잡음인지, 폐도 잡음이 어떤 종류이고 원인과 처방에 대해 꿰뚫고 있어야만 한다. 널싱 첫 과목에서 배우는 것들은 신경계, 피부, 심장, 폐, 복부, 걸음걸이까지 이상 소견을 알고 짚어내는 것들이다. 사실 일반 의원을 가면 처음 받는 진찰,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어야만 했다. 게다가 미국 널싱과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고등학교 때 AP라고 해서 미리 과목을 좀 듣고 온 학생들도 있고,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을 하다 오거나 아니면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수업받는 학생들이 꽤 많다. 그들의 지식과 현장 경험에 비한다면 난 말 그대로 쭈구리였다. 게다가 시간 안배에 실패해서 널싱 첫 과목은 그야말로 처참했고, 난 겸손을 배웠다. 널싱 과목들은 죽도록 열심히 해야 하고 그래도 좋은 학점은 못 받을 거라는 진실을 말이다.
영어는 늘 내 발목을 잡았다. 문과 출신이지만 난 국어를 선택해서 영어와는 거리도 멀었고, 한국에서 졸업했던 대학교에서도 국문학이 부전공일만큼 영어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내가 영어로 공부를 시작했으니 잘 될 리가 있나. 문법도 제대로 안 갖춘 상태에서 억지로 뛰어들어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써가며 살아남고 있었는데, 영어책이라니. 영어책.
예상대로 유래 없이 정말 많은 학생들이 과락에 걸려 유급을 당했고, 아마도 이건 팬데믹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팬데믹은 이렇게 넓고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했어도 분명히 “Nurses eat their young.”이라는, 한국의 마일드한 버전의 “태움”이 존재한다고 배웠는데, 팬데믹이 이걸 싸악 가져가버렸다. 정말 많은 널스들이 그만두었고, 현장에서는 부족한 널스를 수급하지 못해 일이 더욱 가중되었다. 그래서인지, 학생 널스들이 귀해졌고, 병원에서도 매우 좋은 대접을 해줬다. 아마도 내가 졸업한 이후에도 이런 호의적인 대우는 계속될 것 같다. 다만, 내가 과락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잘 살아남아 졸업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