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술
구순의 어머님이 고향에 혼자 계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26년!
일곱 형제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복닥거리며 사는 동안 어머니는 혼자 고향을 지켜왔다. 우리 일곱 형제는 매년 꽃피는 사월이면 엄마를 찾아뵙기로 약속하였다.
올해는 4월 첫째 주 토요일로 정했다.
새벽을 뚫고 도착해 보니 어머님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릴 반겨주었다. 미리 오셔서 짱뚱어탕을 끓여놓은 큰 오빠에게도 고마워하며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어머님이 누워 계시다가 정신이 혼미해진다고 호소하였다. 스스로 왜 이러니? 하면서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119가 와서 저혈당인걸 알게 되었다. 꾸준히 드시고 계신 혈압과 당뇨약, 그리고 입맛 없다고 식사를 잘 드시지 않은 게 원인이었나 보다. 또 자녀들이 온다고 쑥 캐느라 애쓴 덕분이었을까?
우리는 놀랬고 또 걱정되었다.
병원에 다녀오신 어머니께 전복죽을 쑤어 드리고 1박 2일의 여행 중 1박을 하고 있는데 저혈당 쇼크가 밤중에 또 찾아왔다. 병원을 다녀오시고 당뇨약을 드리지 않기로 하였다. 출장 때문에 며칠 더 머물 큰 오빠가 뒤처리하기로 하고 우리는 일요일 낮에 아픈 엄마를 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제 엄마 혼자는 아니 되겠다 싶었다. 걱정을 한 보따리 움켜쥐고 오는 내내 마음만 힘들고 생각만 많아졌다.
어머님은 그 후 병원 검진을 통해 위에 병변을 발견하셨다.
일곱 형제는 수술만은 안된다. 해드려야 한다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혼자 두실 수 없어 모시고 와야 했고 또 요양등급도 받아야 하는 절박함을 실감했다.
그 일들이 일곱 형제의 손에서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동생들은 요양등급을 신청하고 심사를 도왔다. 나는 어머님이 오셔서 진료를 볼 서울 병원을 알아보았고 의사 선생님도 검색했다.
기 등록된 ㅇㅇ의료원, 소화기내과 센타장님에게 어렵지 않게 예약하였다. 결국 서울병원에서 검사하고 속시원히 의사선생님 말씀을 듣고 시술 여부를 결정하였다.
이 일을 추진하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돕는 형제애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어머님을 모시는 동안 오랜만에 24시간을 함께했다. 내가 곤하게 잔다고 화장실 갈 때도 안 깨우고 가시기도 하고 ㅠㅠ. 수다스럽진 않지만 중요한 일의 결정이나 진행과정을 신속하게 의논하고 형제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지근 거리에서 지켜본 어머님은 깔끔하시고 우리 칠남매 걱정에 날 새는 줄 모르신다.
일어나서 세수하시고 머리단장까지 곱게 하시면서 머리가 길어 노답이라고 하시며 웃으셔서 미용실도 예약해 두었다..
시술을 앞두고 혀끝에 맴돌던 두렵다는 말씀을 겨우 내놓으신다. 어찌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면서 깨어나보면 상황이 다 잘 돼있을 것을 상상하자고 말씀드렸다. 간호사도 안심을 보태주었다.
나도 기도한다.
어머님의 병변이 깨끗하게 제거되시길 ,
절차대로 수술이 잘 마쳐지기를,
그리고 또 잘 회복되시길.....
다행히 시술은 잘 마쳤고 지금은 회복 중이시다. 내가 은퇴하지 않았다면 이 천금같은 어머니와의 밀애를 어찌 꿈이나 꾸었을까? 다시한번 은퇴후의 내 삶에 보람을 초대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