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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Jan 09. 2024

선물


                                                                 

게리 채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에 관한 출판사 서평을 보다가 눈에 띄는 글귀가 보인다.     

「사랑은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이다.」      

남편 흉을 좀 봐야겠다. 남편은 결혼기념일에, 내 생일에 스스로 알아서 선물을 준 적이 내 기억에는 없다. 꽃다발도 갖고 온 적이 거의 없다. 종종 꽃 선물을 받은 기억이 있긴 하다. 그것은 누군가가 준 꽃을 나에게 가져온 것과 성당에서 레지오 활동을 하고 난 뒤 사용했던 꽃을 종종 가져오는 것이다. 최근은 레지오 활동을 쉬고 있으니 그것마저 없다.      

남편은 아내 자랑을 하면 팔불출인 줄 안다. 아내에게 잘하면 안 되는 줄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시아버님도 꼭 같으셨다. 아내에게 결코 다정다감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호통을 많이 치셨다. 어머님은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신다. 안절부절못할 때도 많았다. 내가 보기에 딱하고 안쓰러웠다. 어머님은 경상도 가부장의 대표주자 아버님 앞에서 늘 주눅 드신 것처럼 보였다. 종종 남편에게 말했다. 어머님이 너무 안 되어 보였다고, 그 삶은 닮고 싶지 않다고.      

 나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면 나는 미리미리 주문을 한다. 어머님의 삶을 닮고 싶지 않아서 라기보다 남편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선물을 안 주려는 것은 아니고, 주는 방법을 모른다고 생각되므로 가끔은 억지로 함께 나가서 내가 골라 내 선물이라고 받기도 한다. 그렇게 받은 선물도 재미가 있다.     

 나이가 좀 든 요즘은 나도 내 생일을 잊는 때가 많다. 전날까지 생각하다 당일에 잊어버리기도 한다. 아들들이 모두 결혼해서 나가고 나니 이젠, 함께 모일 수 있는 날을 정해서 그 날짜에 밖에서 만나 식사를 하게 되니 당일 생일은 잊어버리기가 쉽다. 이번 내 생일은 모처럼 작은 아들네 4 식구가 함께 한 달 살이 하는 기간 동안 다가왔다.      

이번에도 당연히 남편에게는 기대하지 않았다. 생일날 저녁 무렵 며느리가 미역국을 끓이느라 분주했다. 어색하다. 당일저녁 부엌의 주도권을 잃고 손녀를 보고 있으려니 뒷방 늙은이 된 기분이기도 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내 생일을 맞을 때 내가 미역국 끓여 조용히 시간 보내거나, 잊어버리고 있을 때가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조차 든다.      

  갑자기 남편이 안 보인다. 평소에도 말없이 볼일 보러 잘 나가서 “할아버지” 하면서 일부러 불러보기도 하지만, 오늘은 진짜 말없이 나가버린 듯하다. 부엌에서 분주한 며느리에게      

  “할아버지 어디 가신 겨?”

  “모르겠어요. 혹시…, 꽃다발?”     

내가 손사래를 쳤다.


  “아예, 그럴 리도 없고, 꿈도 안 꾼다.”     

그러고도 한 시간이 지날 때까지 남편은 전화도 안 받고, 연락 두절이다. 연락이 안 되면, 일 전에 아팠던 적이 있기 때문에 종종 걱정을 하게 된다. 남편은 내가 걱정하는 것을 약간 즐기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장기간 여행을 가거나 무소식일 때, 내가 먼저 연락 안 하면 서운해하기도 하니 또 전화를 해 보게 된다. 여전히 전화를 안 받는다.      

  “띠디디딕 띠딕”     

현관 비밀번호 터치하는 소리가 난다. 일부러 모른 체해 보려다 날이 날인지라 현관으로 눈길을 보내었다.     

  “전화도 안 받고, 어디 다녀오세요?”  

  “짜잔~”     

웃는 얼굴로 들어온 남편이 뭔가를 뒤에 숨기고 들어오더니, 어색한 행동으로 꽃다발을 내민다. 난생처음 이벤트를 준비했으니 그 모습이 어설프게 보인다. 꽃다발을 받는 나도 엉거주춤이다. 그 분위기를 털어내기 위해 남편 볼에 뽀뽀했다. 며느리와 손녀는 주변에서 “하하 호호”다. 


사랑은 배우고 익혀야 하는 기술이라는데, 우리 부부는 그 기술을 이제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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