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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Jan 16. 2024

왕년에 교사


  “엄마, 내일 애들 좀 봐주실 수 있어요?”

  “왜?”

  “이모님이 몸을 좀 다쳐서 당분간 쉬어야 해요.” 

                   

  큰아들이 SOS를 했다. 종종 있는 일이다. 어쩌다 한 번씩 긴급신호를 보내면 손녀를 돌보아 주어야 하니 달려간다. 이번엔 매주 수요일 당분간 좀 와야 한단다. 사돈집까지 부탁하고 수요일은 내게 배당한듯하다. 나도 정년퇴직까지 직장을 다녔으니 맞벌이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뒷바라지해 주고 싶다.      

 수요일은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온다. 학습지와 놀이 교구로 활동하는 학습을 한다. 두 손녀 중 한 명이 공부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내가 돌본다. 두 아이가 모두 오랜만에 본 나보다 선생님을 좋아해서 선생님과 같이 있으려 하고 나와 같이 있으려 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한 명씩 데리고 수업해야 한다고 하며 곤란해한다. 서로 먼저 하겠다고 떼를 쓰니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 나도 왕년에 선생님이었는데 내 말이 먹히지 않는다. 나는 그냥 할머니일 뿐이다.        

겨우 말이 좀 통하는 여섯 살 큰손녀 가은이를 달래어서, 네 살 둘째 손녀 채은이가 먼저 하도록 순서를 정한 후, 채은이는 공부방에 남아있게 하고 가은이만 거실로 나와서 같이 놀게 되었다. 차와 간식을 준비해서 공부방에 들여보내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가은이는 자기가 갖고 들어가겠다고 한다. 잠시라도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눈치다. 선생님을 잘 따르는 것 같아 반갑기는 하다.     

  큰손녀가 밖으로 나오자 나는 왕년에 교사였는데 하는 마음으로 손녀의 공부를 살펴보아주고 싶었다. 국어, 수학, 영어 공부인데 유치원 애기들의 놀이 중심이 아니라 초등학교 1학년 이상의 학교 숙제처럼 보인다. 어린이집,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벌써부터 공부라는 굴레에 발 들여놓은 듯하다.     

 가까이서 보니 스티커 붙이기가 많고, 선긋기와 그리기로 구성되어 있어 재미있어 보인다. 손녀에게 “할머니가 알려줄까?”하며 다가가 펼쳐진 책을 보려고 했다. 그 순간 “선생님은 방에 있는데….” 하며 관여하지 말라는 듯 책을 자기 쪽으로 당겨간다. ‘오잉? 나도 왕년에 교사야, 교사. 아니, 교장 선생님이었다고….’ 하는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할머니도 선생님이었어….”

  “할머니 무슨 선생님 했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주면서 손녀가 물었다. 눈**선생님인지, 가*선생님인지 하는 자기들 주변의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묻는 것이다. 왕년에 선생님인 건 틀림없는데 어린 손녀를 데리고 “나 선생님이었다” 말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좀 거시기하다. 입 밖으로 말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생각하다가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다.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 뭐야?” 

   “다음에”

   ‘예쁜 손녀의 좋은 할머니 보다 더 좋은 감투가 어디 있겠는가, 이 무슨 주    책인가’     

  더 이상의 이야기는 수면 아래로 폭우 욱 집어넣고 놀아주는 방법을 바꾸었다. 몸을 움직이며 놀 수 있는 공놀이 하자며 꼬드겨 놀아주니 좋아한다.     

  체육시간에 아이들과 수업했던 공놀이 시간이 떠오른다.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도 규칙에 맞추어 수업진행을 했으니, 한 명의 손녀와 노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큰 손녀는 그래도 말이 통하니 함께 놀 수 있어서 다행이다. 공으로 던지는 방법을 다르게 하면서 던지고 받기만 해도 ‘까르르’ 거리며 재미있어한다. 왕년에 교사,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채은이 공부가 마무리되자, 가은이는 순서가 되어 공부방으로 들어갔으나, 채은이는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는다. 떼를 쓰며 막무가내로 선생님과 함께 있겠다고 한다. 왕년의 선생님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설득에 나서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억지로 끌고 나올 수도 없고, 온갖 것을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맛난 간식을 주겠다고 해도 갖고 들어가 버린다. 나중엔 할머니 가버리겠다고 협박(?)을 해서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은 옳지 않은 방법인데 체면이 서지 않는다. 가은이와 함께 했던 방법으로 공놀이를 해보니, 채은이는 공놀이가 잘 통하지 않는다. 한 명 데리고 놀아주는 것도 힘이 든다.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이 여러 명 데리고 있는 것은 참 힘든 일일 듯하다.      

  가은이는 내 말에 맞추어 주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채은이는 자기가 제시한 방법에 내가 맞추어해야 했다.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도 놀이의 방법을 바꾸어 가면서 자기가 제시한다. 자기가 말하는 대로 따르라는 것이다. 자기가 해보고 잘 안 되는 방식이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면서 놀이 방법을 바꾸자고 한다. 어리지만 자기 주도적인 면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또 어깃장을 살짝 놓았다. 이 세상은 너의 방식대로 다 돌아가지는 않으니 다른 사람의 방식에 맞추어 보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교육적인(?)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어깃장 방식의 밀당도, 실패!      

손녀에게 맞추어주면서 평화로이 어울려 노는 방식으로 겨우 마음 좀 얻었다. 왕년의 교사 할미가 선생님 노릇 좀 해보려다 손녀 마음 잃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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