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봉사하는 날이다. 우리 그룹원은 6명. 일주일에 한 번 창세기부터 성경공부모임을 갖는다.
어린 시절부터 때가 되면 절에 다니는 엄마를 보며 자랐고 우리 집은 불교집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대학을 가서도 불교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시간이 날 땐 사찰을 찾아다니며 수련활동을 하기도 하고 결혼 후에도 남편과 함께 시간이 날 땐 성지순례를 위해 절을 찾아가기도 했다. 학교에서 동료 선생님과 도반이 되어 주말엔 함께 해인사 백련암을 찾아가 삼천배까지 올리는 때도 있었고, 참 열심이었다.
우리 가족이 서울로 올라온 후는 집 근처 사찰을 가기도 했지만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함께 하던 도반도 없고 남편도 함께 하지 않았다.
“당신과 절에 함께 다니며 부부법회라도 함께 갔으면….”
“부부법회는 안 가”
“그럼, 나 성당으로 갈래요”
“당신 혼자 가. 막지는 않겠어. 내가 성당 가지는 않을 거야”
“어차피 절에 가도 혼자이고, 성당에 가도 혼자이면, 성당으로 가겠어요. 거긴 함께 할 사람들이 있어요.”
어린 시절 우연히 길에서라도 만나면 이유 없이 고개 숙여졌던 수녀님, 신부님, 성당이 떠올랐다. 가까이하고 싶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던 날들이 있었다. 성당으로 가 보고 싶었으나 감히 갈 수 없었던 곳이다.
용기 내어 집 근처 성당으로 발을 옮겼고, 낯설긴 했지만 우연히 만난 친절한 지인을 만나 안내를 받고 예비자 교리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6개월의 긴 기간 동안 체계적으로 교리공부를 하게 되었고, 기도하는 방법도 익히게 되었다. 세례를 받는 날,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되었고, 주님의 은총이 느껴지는 듯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는 날이 되기도 했다. 40이 넘어서야 세례를 받았으니, 그동안 성경을 가까지 하지 않고 살아왔고 모르는 게 많았다. 성경그룹공부 모집 안내를 보자 성경이라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창세기부터 시작하게 된 모임, 한 해 한 해를 보내게 되다 보니 어느새 성경 봉사자 교육까지 받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수녀님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분의 그 분위기에 이끌려 그냥 따라가고 성스러운 여인, 천상의 선녀로 보이고,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집과는 전혀 동떨어진 분위기의 성당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사라는 말, 수녀님이라는 말, 신부님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조차 부러워할 때도 있었다. 친구 집에 가서 십자고상을 보게 되면, 공연히 부럽고 성당과 관련되는 말을 하는 사람,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기만 해도 부러웠다.
그랬던 내가 성경공부 봉사까지 하게 되다니, 참 많이 발전한 이경란 아우레아이다. 비록 작년에 처음으로 봉사를 하였고, 올해가 두 번째 해이다. 성경공부모임을 할 때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나의 기도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여러 번 말하기도 했지만 그분의 백그라운드를 믿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함께하고 있는 그룹 원들을 보면 가톨릭에 오랫동안 몸담은 사람들로 보이고 봉사하는 마음들이 얼마나 큰지, 마음의 크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믿음의 마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오기도 한다. 매주 만나는 날이면 서로 마음을 터놓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위로의 시간, 새로움을 알게 되기도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그분들의 표정을 보면 느낄 수 있다.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다음 주를 기다리는 표정들이 보여 흡족하다.
오늘 또 한 번의 감동을 받았다. 카네이션을 준비해 온 것이다.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나는 수많은 꽃다발을 주기도 받기도 했지만, 그 어떤 꽃을 받았을 때보다 더 감동스러웠다. “성경공부 함께 합시다. 함께 합시다.” 부탁하다시피 해서 함께하는 성경공부 그룹 원이며 내가 감사의 꽃다발을 전해야 할 사람들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