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May 24. 2023

리뷰_<뉴스룸>: 치열하게 살고 싶다면

미드추천/웨이브/

<뉴스룸> - 시즌1

미국 드라마 2012~2014년작/ 웨이브



줄거리

ACN 대표 간판 앵커 윌 매커보이와 그의 전 여친이자 실력 있는 PD 매켄지 맥헤일을 중심으로 가치 있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 돈키호테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는 ‘뉴스나이트’ 보도팀의 이야기.


치열함을 담은 드라마

<뉴스룸>은 대사가 굉장히 많고 빠른 데다 시사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대사를 하나라도 놓치면 내용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여유롭게 감상하기 일쑤인 요즘의 감상 습관을 고칠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이 무척 빠르다. 그만큼 등장인물들의 치열한 일상을 실감 나게 담고 있다. 보도국 특성상 매일 새로운 문제들이 터지고 그걸 수습하면서 마감 시간에 맞춰 급박하게 멀티태스킹을 해야 하는 중압감을 거뜬히 견디며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뉴스나이트’ 팀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하루보다 그들의 하루가 훨씬 농도가 짙다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진다. 모티베이션이 필요한 이들이 보면 의욕이 마구 불타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윌 매커보이의 매력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 윌 매커보이에게 있다. 사회 경험을 백악관에서 시작한 검사 출신의 엘리트로, 단순히 대본을 읽는 앵커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관과 사회관으로 뉴스 전체를 이끌어 가는 편집장이기도 하다. 지성을 반짝이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신랄한 비판을 거침없이 내뱉는 윌을 보면 지성인의 바이블처럼 보인다. 게다가 팀원들이 뉴스를 위해 일하다가 어려움을 겪게 됐을 때, 회사마저 외면하는 상황에서도 윌은 배의 선장답게 모든 이슈를 책임지고 도움을 준다. 이는 뉴스를 위해 고용한 외부 프리랜서나 인터뷰에 응해준 인터뷰이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며, 책임을 진다는 것은 거금의 사비를 들이거나 팀원들의 크고 작은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윌이 항상 이성적인 것만도 아니다. 시청률에 연연하는 속물근성도 가지고 있고, 주변 의견에 휘둘리기도 하며, 가끔 감상에 젖어 의욕이 넘칠 땐 팀원들에게 평소에 하지 않을 응원의 말을 남발하기도 한다. 게다가 전 여자 친구이자 메인 PD 매켄지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해 어리석은 결정을 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골 때리기도 하면서도 지성인의 인간적 면모로 느껴지며, 바로 이런 양면성이 윌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 드라마에서 공과 사가 뒤섞인 건 비단 윌만이 아니다. 24시간 붙어 지내야 하는 보도국 팀원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공과 사의 선을 넘나들며 우정을 쌓아가는데, 이런 모습이 꽤나 부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직급을 떠나 업무적으로도 사적으로도 건강한 비판이 허용되는 사이라니 정말 꿈에서나 나올 법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답답한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얼마 전에 <뉴스룸>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오래된 드라마이긴 하지만, 윌 매커보이가 한 여대생의 질문에 신랄하게 답변하는 <뉴스룸>의 맨 첫 장면은 아직까지 짤로 돌아다닐 정도로 오랫동안 회자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뉴스룸>은 나 역시도 주인공들 같은 지성인들 사이에서 매일매일 중압감을 견디는 일을 하며 치열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드라마였다. 하지만 시즌1을 워낙 감명 깊게 본 터라 시즌2의 여러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엔딩을 미리 알아버려 흥이 끊겨 중간에 하차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가슴 깊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드라마였다. 이번에야말로 꼭 끝까지 보겠다는 다짐으로 <뉴스룸>을 시작했고, 역시나 <뉴스룸>은 기대 이상이었다. 오히려 나이를 먹고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덕에 어릴 때 봤을 때보다 더 감명 깊었고, 더 동화 같이 느껴졌다.


황색 저널리즘에 놀아나는 국민들을 계몽하리라는 거대하지만 순수한 목표 아래 모인 보도국장 이하 책임 PD, 앵커 겸 편집장,  수억 대의 연봉을 걷어찬 경제 전문 패널, 그 외 제작진 모두가 한마음으로 일사불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움직인다. 한 팀의 돈키호테처럼. 그리고 이 뉴스룸 안에선 누구 하나 자기 몫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선 존재하기 힘든,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고 싶지 않은) 꿈의 직장이자 공동체다.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각기 다른 강점을 내세워서 반드시 맡은 바를 해내고 마는 구성원들. 구성원들이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외부의 공격을 최대한 막아내고, 구성원들의 안전과 안녕을 회사보다 더 신경 쓰는 관리자들. 이 모두가 마치 유니콘과 같은 존재이지만, 그들이 다루는 뉴스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천박한 정치인들, 건전한 비판을 매국으로 받아들이는 우매한 국민들, 국민의 안녕보다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이권 카르텔들. 다른 국가를 배경으로 한 10년 전 드라마임에도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은 애국심에 도취되어 현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며 건전한 비판보다는 자극적인 뉴스에 쉽게 선동되고 있었고, (그리고 아마도 지금도...) 때문에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하지 않다. 하지만 다시 위대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진보, 보수 상관없이 한마음으로 모여 가치 있는 뉴스를 생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저널리스트들은 우리나라에서도 간절하게 필요한 존재로 느껴진다.


시즌1 11화에서 뉴스나이트 팀은 유권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질문을 묻고 답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공화당 경선 토론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고 싶어 한다. 몇 주간에 걸쳐 경선 참가자들의 기존 인터뷰를 전부 모아 모의 토론을 준비하고, 혹여 떨어진 시청률이 방송사가 새로운 토론 방식을 거절할 명목이 되지 않도록 울며 겨자 먹기로 자극적인 뉴스에 동참해 시청률을 사수한다. 하지만 공화당 경선 토론 섭외를 하는 날, 공화당 관계자는 이들이 준비한 모의 토론을 보고 기막혀한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들은 유권자들 편이잖아


사실 정상적인 사회에서 이 말은 비판으로 쓰일 말이 아니다. 언론이 유권자들의 편에 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화당 국회의원들은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없도록 여권이나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들은 투표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들의 명목은 부정 투표인데, 우습게도 3억 명 이상의 인구 중에서 부정 투표는 고작 89명에 그치고 있다. 결국 공화당은 뉴스나이트의 진지하고 깊이 있는 경선 토론보단 좋아하는 배우 따위를 묻는 시답잖은 토론을 선택한다. 아마도 자신의 멍청함과 더러운 욕심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였으리라.


시즌1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나 시즌 피날레였다. 윌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방송사 모그룹의 회장으로부터 자신들만의 뉴스를 하겠다고 허락을 받는다.

Don't shoot and miss.

회장의 이 말은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반드시 명중시키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날 뉴스에서 윌은 마치 날개를 단 듯 거침없이 비판한다. 먼저, 그날 뉴스의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Republican in Name only
이름뿐인 공화당


그리고 윌은 진정한 보수가 아닌 이름만 보수인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Ideological purity. Compromise as weakness. A fundamentalist belief in scriptural literalism. Denying science. Unmoved by facts. Undeterred by new information. A hostile fear of progress. A demonization of education. A need to control women's bodies. Severe xenophobia. Tribal mentality. Intolerance of dissent. Pathological hatred of the U.S. government. They can call themselves the Tea Party. They can call themselves conservatives. And they can even call themselves Republicans, though Republicans certainly shouldn't. But we should call them what they are - The American Taliban. And the American Taliban cannot survive if Dorothy Cooper is allowed to vote.'
'이념적 순수성, 타협을 나약함으로 치부하는 태도, 성서 문자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 과학 무시, 진실 부정, 새로운 정보 배척, 진보에 대한 적개심, 교육에 대한 매도, 여성의 육체를 통제하려는 욕망, 심각한 외국인 혐오, 부족적 사고방식, 반대에 대한 불관용과 정부에 대한 병적인 혐오. 이들은 스스로를 티파티나 보수나 공화당이라 칭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공화당이라면 그렇게 부르지 않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있는 그대로 부릅니다. 이들은 미국의 탈레반입니다. 도러시 쿠퍼(앞서 말한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투표하지 못하는 사람들)가 투표권을 얻으면 미국의 탈레반은 생존할 수 없습니다.'
**웨이브의 <뉴스룸> 시즌1 자막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퀄리티라서 그대로 인용함.**


참으로 짜릿한 피날레가 아니었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뷰_<웹 오브 메이크빌리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