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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Aug 25. 2023

리뷰_<형사록>: 웰메이드 누아르

한드 추천/형사물/디즈니플러스



금오시를 둘러싼 거대한 비리를 수사하는 일개 형사 김택록의 기록.


<형사록>을 한 줄로 설명하자면, 위의 문장이 될 수 있겠다. 저 문장만 보면 수많은 형사물/수사물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 시즌 모두 본 입장에서 이 작품은 확실히 뭔가 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시즌1에는 주인공 김택록 형사가 하루아침에 영문도 모른 채 살인범으로 몰리면서 범인 ‘친구’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녔다면

시즌2에서는 마치 바둑의 고수처럼 고요하게 큰 그림을 그리는 주인공의 치밀함과 베테랑 형사의 면모를 보여주며 완벽한 떡밥 회수와 개연성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렇기에 시즌1에는 어떤 캐릭터도 믿지 못한 채 요원한 진실을 좇는다는 점에서 재미를 느꼈고 시즌2에서는 어른들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수사물로서의 재미를 따지자면 의문의 살인 사건의 진실과 ‘친구’의 정체를 추적하는 시즌1이 더 스릴 넘친다고 느껴진다. 시청자조차 매 회마다 누가 범인인지 누굴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진범으로 의심되는 ’친구‘의 요구대로 택록이 자신의 형사록을 보며 과거 사건을 되짚어 가는 부분도 흥미롭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즌2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고, 그런 의미에서 시즌 2에 집중해서 리뷰를 해보려 한다.




‘김택록’

김택록 형사는 여느 형사물의 주인공처럼 그저 일개 형사다. 그것도 정년을 눈앞에 둔, 승진에서 한참 밀려난 늙다리 형사. 이렇게만 들으면 ‘여느 한국 수사물에 등장하는 캐릭터 같네’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울 것 없고 결국 모든 이야기는 주제의 독창성보단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드라마는 김택록이 나이테처럼 쌓아온 아픔과 트라우마의 무게감을 묵직하게 보여주며, 우습게

보이는 아저씨일지라도 한 분야에 오랜 경험을 쌓아온 사람이 칼을 갈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가족도 떠나고, 돈도 없고, 동료들도 각자의 길로 떠나버린 뒤 남은 고독함. 고작 이것이 택록의 30년 커리어의 결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질문은 두 시즌 내내 김택록을 따라다닌다.


그럴 만도 한 게 그의 형사 시절을 돌아보면 보는 사람도 걱정스러울 만큼 트라우마로 점철돼 있다. 시즌1에서 택록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과거 사건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그러면서 30년 형사 생활 동안 제대로 해낸 것이 없다는 자괴감에 휩싸인다. 많은 동료들의 부상과 죽음, 자신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아픔. 그리고 그로 인한 죄책감.


결국 그는 스스로 이런 결론을 낸다.

‘형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어.’


하지만 드라마를 끝까지 본 시청자들은 안다. 그가 그 누구보다 형사다운 인물임을. 수많은 유혹의 갈림길 속에서도 오직 그만이 형사의 본질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와 달리 경찰로서의 정체성을 버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스레 택록과는 다른 길을 갔고 그 결과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형사다운 형사 그 자신이 남게 됐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고 존경하는 후배들, 가족처럼 여기는 지인들, 그의 실력을 인정하는 동료들이 남았다.




누아르적 묘미

김택록과 그의 인간관계에서 아저씨들의 세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꽤나 새로운 재미로 다가왔다. MZ세대의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요즘, 한 분야에서 단맛 쓴맛 다 본, 지칠 대로 지친, 하지만 누구보다 강력한 내공을 가진 중년 어른의 세계를 보여주는 콘텐츠는 몇 개나 될까.


주인공도 악역도 서로 긴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입장 차이를 파악하고, 말보단 행동으로 각자의 선택을 보여준다.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 서로 다른 길을 가더라도, 그리고 그게 선과 악으로 구분될지라도, 인간적으로는 서로를 안쓰러워하는 어른 특유의 너그러움. 그래서 하나가 다른 한 명을 감옥에 보내더라도 악감정을 갖지 않는 그런 의리. 이 작품은 그런 묵직하고 쓸쓸한 미덕이 남아있는 아저씨들의 세상을 묘사한 꽤나 멋들어진 누아르라 볼 수 있다.




30년 동안 내려온 선택들의 결과

모든 형사물은 거대한 비리를 수사한다. 그리고 비리의 생김새는 전부 똑같다. 특별한 비리란 없다. 비리는 그저 약육강식이나 선민사상의 논리로 탐욕을 합리화하는 자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자리해보려는 뒤틀린 야망을 가진 자들, 큰 뜻을 이루려다 선과 악 사이에 있는 선을 넘어가버린 자들 등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이권 카르텔을 단 한 명의 베테랑 형사가 좇는 모습은 꽤나 새롭다. 커다란 권력을 가진 또 다른 세력에게 기대지도 않고 오롯이 혼자 쌓아 올린 자산과 경험으로 모든 이들의 수를 내다보고,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이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30년 동안 묵묵히 한 길을 걷는다는 것의 위대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유혹과 갈림길이 있었을까. 그 모든 것 앞에서 본질을 하나만 지키며 살아온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강인한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그 길이 가시밭 같고 처절하게 고독해도 결국 옳은 길을 선택한 자에게는 누구에게 밀리지 않은 강인함과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실력이 쌓이기 마련이다.


본인은 행복한 삶에서 멀어 보이지만, 그 고통스러운 세월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말하고자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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