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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Mar 25. 2023

첫 봄

2023년 나의 첫 봄은 3월 11일 주말부터 시작됐다. 그전부터 기온은 봄이 왔다는 신호를 틈틈이 보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공기 속에는 차마 시원하다 말할 수 없는, 미세하게 찬 기운이 섞여있었다. 가을조차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나에겐 봄으로 여기기엔 기준에 못 미치는 날씨였다. 하지만 지난 주말 비로소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완연한, 어찌 보면 조금 과도하게 무르익은 봄기운이 찾아왔다. 20도를 넘기는 기온은 이게 봄의 마지막인지 여름의 시작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따뜻했지만, 보통 3월이면 찾아오는 꽃샘추위가 전혀 반갑지 않았던 나로선 3월 초에 불쑥 찾아온 따뜻한 봄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추운 겨울 동안 움직임이 굼떠지고, 행복감이 현저히 낮아지는 나를 밖에 나가고 싶게 만들고, 이유 없는 행복감을 선사해 주는 봄은 시기를 막론하고 그저 반가운 존재였다.

난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이 축제나 다름없는 첫 봄을 만끽해야 했다. 열두 달 중 고작 한두 달 지속되는 이 짧은 행복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난 최선을 다했다. (사실 이렇게 몇 주 만에 글쓰기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주말 동안 할 일이 잔뜩 쌓여있는 남편을 아침부터 꼬드겨서 늘 가보고 싶었던 노천카페를 가는 것으로 첫 봄을 축하했다. 반드시 노천에 앉아야 하는 의무감이 느껴지는 이 축복받은 계절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기 때문에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 늘 책을 읽어야 했던 학창 시절, 난 지루한 책을 의무감에 쫓겨 지지부진하게나마 읽어야 할 때, 사소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공원에서, 잔디밭에서, 벤치에서 자리를 잡곤 했다. 그때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억지로 만들어낸 그 행복감이 아직까지 뇌리에 박혀 있을 정도로 벅찼던 것일까. 뭐가 됐든 난 여전히 노천에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게 DNA에라도 박혀있는 것처럼 꼭 해야만 하는 의무로 느끼고 있다. 남편이 옆에 있는 지금은 예전처럼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옆에서 나와 같은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또 다른 기쁨이 대신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의외로 너무 맛이 없는 커피도 망가뜨릴 수 없었다. 이는 맛없는 커피보단 레몬향이 가득한 파운드케이크에 집중하며 노천을 즐기고, 좋아하는 베이커리에서 까눌레를 포장하는 것으로 일부러 더 봄 분위기에 한껏 취해보려 노력한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남편이 혼신의 힘을 다해 찍어준 인생샷은 이 외출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주었다.


첫 봄을 이대로 보내기 아쉬웠던 우리는 결국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얼른 집에 돌아가려는 계획을 바꿔서 외출을 좀 더 연장하기로 했다. 먼저 꽃 시장에 들러 제철 꽃 프리지어와 엄마가 좋아하시는 라넌큘러스를 사는 것으로 봄맞이 일탈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이천 쌀밥 식당으로 곧장 향했다. 식당에 도착할 무렵, 봄이었던 날씨는 어느덧 여름 언저리의 기온이 돼 버렸지만, 축제 분위기에 취한 우리의 발걸음은 막을 수 없었다. 식사 후에는 소화를 시켜야 한다는 궁색한 변명을 우리 스스로에게 해대며 사람들로 가득 찬 아웃렛을 산책하는 것까지 일탈을 확장한다. 포근한 봄 날씨를 즐기면서 걸어 다니다가, 또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세일가로 운동복까지 득템하는 예상치 못 한 즐거움까지 만나고 나서야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우리만의 봄 축제는 그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인 오늘도 계속됐다. 이래저래 바쁜 일도 있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내서 봄을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마도 내년 봄도 이렇게 기념하겠지. 다신 만나지 못할 것처럼 소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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