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별 릴리 Feb 10. 2023

관계의 변화 - 꼬리 칸에 탑승 중

트렌드코리아 2023 인덱스 인간관계

#트렌드 코리아 2023 #인간관계 #인덱스 관계



매년 초 베스트셀러 책들 사이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책이 보인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이 책을 읽을 때면 항상 끝까지 읽지 못했다.

유행에 둔감하고, 큰 변화 없이 묵묵히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데 익숙한 나에게 "당신은 뒤처지고 있어요." "새로운 트렌드를 알아야 성공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차피 연도가 지나고 또 바뀌게 될 트렌드를, 내가 잘 모르는 분야를 알아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져 점차 손길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에는 세상의 변화를 알고 싶어 종이책을 구입해서 찬찬히 읽어보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책에 나오는 수많은 전문 용어, 신조어는 모르는 것 투성이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낯설고 생소하다. '나는 몇 년도에 멈춰져 있는 사람인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2023년 책을 읽으면서 주춤주춤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본다. 눈에 들어오는 내용은 내용대로 흘러가는 내용은 흘려보내며, 관심이 가는 내용은 더 깊게, 그렇지 않은 것은 가볍게 책을 읽고 있다.






그중에서 내 삶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 있었다. 인간관계의 변화를 설명한 '인덱스 관계' 챕터였다.  


작년에 우연히 옆에 있던 남편의 카톡 대화방 목록을 보았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있다는 표시 999+가 있는 단톡방이 주욱 늘어져있었다. 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것을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남편은 투자와 사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이 책에서 말하는 인덱스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다. 카톡이 오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읽지 않음을 없애야 하는 나에게는 999+는 큰 충격이었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친하다'와 '친하지 않다'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는 과거의 인간관계와는 달리, 현대인의 인간관계는 친함/친하지 않음의 구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내가 선망하는 사람, 나랑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 나에게 최신 뉴스를 알려주는 사람,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 등 매우 다양한 관계의 스펙트럼이 생겨났다. 생애 주기(life stage)를 거치며 오랜 기간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시대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각종 색인(index)을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관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대로 변화하였다.



이 책에서는 인덱스 관계를 관계 만들기-관계 분류하기-관계 유지하기로 나누어 그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사람들은 어떤 '목적'에 따라 관계를 만든다.

나는 작년 11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글쓰기 소모임(Log me)에 참여하게 되었다. 온라인에서는 뉴스 기사를 보거나 쇼핑만 했었는데 처음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블로그에 한 달에 최소 15개의 글을 꾸준히 쓰도록 서로 관심을 가져주고 정보도 나누는 소모임이다.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와 '랜덤'으로 관계를 맺기도 한다.

남편은 100명이 넘는 익명의 사람들과 오픈 채팅방에서 다수 대 다수로 대화를 한다. 나는 오픈 채팅방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순식간에 흘러가는 채팅방은 생각만 해도 벅차다. 서로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과 랜덤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아직은 좀 힘들 것 같다. 일단 목적을 가지고 만난 글쓰기 소모임부터 꾸준히 참여해 보려고 한다.



둘째, 관계를 분류하며 관계 인덱스에 따라 SNS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예를 들면, 부장님과 업무 이야기를 카카오톡으로 나누지만, 인스타그램 DM으로는 나누지 않는다.

요즘 10대 아이들은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카카오톡보다는 인스타그램 DM(direct message)으로 나눈다고 한다. 특별한 용건 없이도 상대의 게시물을 보다가 "어디야? 뭐해?"라고 DM을 보낼 수 있어 10대들에게는 카카오톡보다 훨씬 친근한 매체라고 한다. 인스타그램 계정만 있고 전혀 활용하지 않고 있는 나로서는 이것도 낯설게 느껴진다.   

동일한 SNS 안에서도 관계에 따라 불편한 사람은 '차단 인덱스'를 붙이기도 하고, 찐친에게는 '사생 인덱스'로 자신의 일상을 전부 공유하기도 한다.



셋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정리하고, 전략적인 관리를 한다. 부담을 느끼지 않게, 섭섭하지 않게 적당히 게시글에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른다. 친한 사람에게는 다양한 소통 도구를 통해 공통의 관심사 목록을 공유한다.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손쉽게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을 활용해서 표현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친구나 지인의 생일을 챙길 수 있게 알려주는 카카오톡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생일을 놓치지 않고 잘 챙기고 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손쉽게 선물을 전달할 수 있는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은 아주 유용하다. 요즘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관계를 이어가고 싶음을,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관계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내가 가끔은 씁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인덱스 관계로 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관계 만들기의 측면에서 설명하면, 전화와 문자 이외에도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매체의 변화는 자연히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코로나19 팬데믹은 비대면의 온라인 관계에 급격하게 친숙해지도록 만들었다.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생애 주기(life stage)도 다양해져서 내가 맺었던 사람들과 다른 생애 주기를 갖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기에 친구나 지인보다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사람들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관계 분류와 유지 측면에서는 설명하면, 관계에서 '자기중심성'이 강조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 매체를 통해 언제든 누군가를 팔로잉 할 수 있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 SNS의 공개 범위도 관계에 따라 달리 지정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소통을 해야 했던 동기 커뮤니케이션(전화 통화, 화상 미팅)과 달리, 비동기적 커뮤니케이션(문자메시지, 게시글 댓글 달기)은 시차를 두고 대화할 수 있고, 원한다면 실시간으로 답할 수도 있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내가 선택해서 관계를 맺고 끊는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좋은 인간관계란 무엇일까?

나는 소수의 사람들과 친밀하고 신뢰할 만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하고 얕은 인간관계는 에너지 소모가 크고 결과적으로 인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남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인간관계의 변화를 나는 버티고 버티다 조금 늦게 경험하고 있다. 작년 11월 글쓰기 소모임을 하며 처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친한 친구보다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더 자주 대화를 주고받으며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느슨하게 연결된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글에 공감하며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단다. 격려와 지지를 받고 나를 성장하게 하는 정보도 얻는다.


인간관계를 친함의 정도로, 관계를 맺은 시간으로만 구분했던 나의 생각이 허물어져간다. 오프라인의 관계만을 의미 있는 관계로 여겼던 나의 편견도 사라져간다. 고정관념과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춤거렸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 글쓰기 모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줌(ZOOM)을 통해 소통하는 시간도 갖는다. 조금 더 유연한 생각으로 인간관계의 변화와 달라진 세상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앞으로는 소중한 사람들과 나무의 뿌리처럼 깊이 있는 관계를 맺고, 뻗어가는 가지처럼 다양한 사람들과도 연결되어보려고 한다.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조화롭게 더 재미있게 살고 싶다.


트렌드 코리아 2023은 이미 우리의 삶에 다가왔지만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신선한 정보가 넘친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대처하는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트민녀(트렌드에 민감한 여자)가 아닌 나에겐 낯선 이야기투성이지만 기차의 꼬리 칸이라도 탑승하기 위해 매년 나오는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드라마 <사랑의 이해> 보이지 않는 계급과 각자의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