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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별 릴리 Jan 23. 2023

숨은 공간 찾기 - 미니 서재 만들기


저는 책을 침대에서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책을 손에 쥐고 순간순간 가장 편한 자세를 찾으며 독서를 합니다. 실상은 앉았다, 옆으로 누웠다, 반대로 누웠다.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독서를 합니다. 

부드러운 이불속에서 하는 독서가 가장 편안했고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노트북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글을 쓸 때도 있어 자연스레 이불 밖을 벗어납니다. 남편이 업무를 위해 컴퓨터가 있는 서재 공간을 사용하고 있으니 저는 우리 집 식탁을 활용하게 됩니다. 


6인용 목제 식탁이라 널찍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좋아서 혼자서 독차지하면 세상 자유롭고 편안합니다. 조명도 주광색(흰색)과 전구색(노란색)의 중간이라 눈이 피로하지 않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됩니다. 이곳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 카페에서 책을 읽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커피까지 곁들이면 완벽하게 카페 감성이 묻어납니다.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안 좋은 것이 너무나 큽니다. 그건 바로, 식사를 할 때마다 식탁에 놓인 노트북, 노트북 거치대, 키보드, 키보드와 마우스 패드, 독서대, 그리고 읽던 책들을 매번 치워야 한다는 겁니다. 많은 날은 하루 3번까지. 

처음엔 기분 좋게 시작합니다. 수백 번을 반복하다 보니 손목이 아픈듯한 생각이 듭니다. 아니 진짜로 아픕니다.


집안을 돌아다니며 치우지 않고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습니다. 거실과 주방, 방 3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침실, 또 하나는 남편의 업무공간, 그리고 남은 하나는 출입문 앞 방입니다. 계절이 지난 옷과 잡동사니를 모아놓는 옷방 겸 창고, 저에게는 겨울철 빨래를 너는 방입니다. 그곳은 거의 사용하지도 않을뿐더러 심리적으로 너무 거리가 느껴지는 방입니다.


이대로 나의 공간은 계속 식탁인가? 하고 있는데 안 좋은 점을 하나 더 발견합니다. 남편의 업무공간과 식탁이 가까이 있어 각종 CS에 응답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뭔가 잘 안되는지 남편의 한숨도 들립니다. 저는 이런 것이 너무 괴롭습니다. 

정서적 초민감자입니다.  


들리지 않는 곳을 찾아야 한다! 나의 멘탈을 지키기 위해 이곳저곳을 둘러봅니다. 

그러다가 침실의 드레스룸 옆 붙박이 화장대를 발견합니다.

여기다! 유레카~~ 

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결혼 전에는 제 책장이었습니다만 현재는 남편의 책장이 된 곳에서 얼마 없는 저의 책들을 빼옵니다. 결혼 전 미니멀리즘에 심취해서 한바탕 중고로 팔아버려서, 또 밀리의 서재를 구독해 버려서 남은 책들이 거의 없습니다. 내가 읽었던, 좋아했던 나라는 사람이 담긴 그림의 일부를 찢은 것 같아서 지금 와서 많은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소설책과 자기 계발 서적, 심리학 책을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소설책은 거의 읽지 않고 그 자리를 인문학 서적과 육아 서적, 마음에 대한 책들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그때와는 조금 달라진 책들을 바라보면서 소설을 읽으며 눈물로 잠을 못 이루던 그 소녀가 그리워집니다.


다시 공간에 집중합니다. 꺼내온 책들과 노트북을 놓으려면 공간을 비워야 합니다. 남편과 함께 쓰는 얼마 안 되는 기초화장품은 침실 화장실 슬라이딩 도어 안쪽에 정리합니다. 화장을 위한 도구는 화장대 바로 아래 서랍으로 넣습니다. 화장대 위에 무언가를 많이 두지 않아서 금방 정리가 됩니다.


화장대의 왼쪽, 잡다한 물건을 올려놓던 곳은 책장이 됩니다.


1층에는 필기도구, 휴지, 물티슈, 안정을 주는 디퓨저, 독서 랜턴(밤에도 책을 보겠다고 잠든 아이 옆, 밤마다 광부가 됩니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놓습니다.

2층부터 아이 얼굴이 담긴 2023년 달력과 내가 현재 읽고 있거나 앞으로 읽을 책을 정리합니다.

3층에는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서 좋은 기억이 남는 책들을 놓습니다.

4층에는 나의 업과 관련된 책들을 놓습니다. 여기는 부케 릴리를 위한 공간이니 직업과 관련된 책은 조금 멀리 둡니다.

5층에는 절대 안 볼 것 같은 책을 놓습니다. 곧 비우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화장대 위에는 독서대, 노트북을 위치에 맞게 정리합니다. 콘센트가 옆에 있어 바로바로 충전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침실은 거의 잠잘 때만 이용해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히 저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년 전 독서실을 다니던 중학생이 된 것 같습니다. 


감성은 아주 많~~~이 포기하고, 공간의 여유도 많~~~이 포기했지만 이렇게 저만의 독서 공간, 글쓰기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2016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혼자만의 공간을 거의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남편이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리하고, 아이가 흐트러뜨려 놓는 것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내 뜻대로 물건을 정리하고 아무도 건들지 않는 공간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글을 쓰다가 자꾸만 바로 앞에 있는 거울을 봅니다. 저와 눈이 마주칩니다. 

앞으로는 거울을 더 자주 볼 것 같습니다.  

언젠가 나에게도 더 좋은 공간이 생기기를 꿈꾸며.. 

다시 신나게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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