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별 릴리 Feb 01. 2023

경험의 추상화 그리기

삶의 경험 바라보기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 5살 아이가 퀴즈를 냅니다.

"이가 아프면 어디에 가죠? 맞춰보세요."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치과!"

"정답입니다."

신나는 목소리로 이어서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이가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똑같이 정답이 치과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임플란트!"

저는 박장대소했고 아이는 표정을 찡그리며 "땡"이라고 합니다.

그러더니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을 이야기합니다.

"베개에 두고 자면 이빨 요정이 나타나 새 이가 나게 도와줘요."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지 출처는 모르겠지만 친절하게, 아주 확신에 가득 차서 잘 모르는 할머니를 위해 설명을 해줍니다.

아이의 해맑음, 순수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할머니와 손녀딸의 엄청난 생각 차이에 웃음이 나옵니다. 그리고 임플란트라고 답한 엄마가 조금짠하게 느껴집니다.


60대인 엄마는 재작년 임플란트 시술을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제1의 치아 유치, 제2의 치아 영구치가 빠진 자리에 제3의 치아로 불리는 인공치아를 심었습니다.

오랜 시간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아마도 그런 경험이 각인되어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5살인 아이는 현재 유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배웠든, 영상을 통해 알게 되었든 이가 빠지면 새 이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직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이가 빠지는 것이 무척 두려울 것입니다. 이빨 요정 이야기를 믿으며 두려움을 달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든 내가 경험한 시야 안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과거의 경험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좋은 경험들로만 삶을 채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어린 시절의 저는 제가 바라는 이상향을 정해놓고 그것에 맞지 않으면 저 자신을 꼭꼭 숨겼습니다. 어른이 되고는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혼자 갈등했던 과거의 수많은 경험들을 지우고 싶었습니다.  그 자리를 좀 더 떳떳하고 좋은 경험들로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죠.


20대 중반에 취업을 하며 했던 완벽한 독립, 그리고 자취 생활은 수많은 경험을 반강제로 하게 만들었습니다.

생필품 구입, 요리, 빨래, 청소를 하고, 때가 되면 공과금을 내야 했습니다. 또 정수기 필터와 전등 교체를 해야 했고, 수도가 동파되거나 밥솥이 고장 났을 때는 직접 연락을 하거나 서비스센터를 방문해야 했습니다. 여름밤 문틈 사이로 벌레 떼가 방안을 가득 채웠을 때 에프킬라 한 통을 다 써서 벌레를 잡고 죽은 벌레들을 치워야 했습니다.


처음 하는 일들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혼자 서기를 하며 겪었던 경험들은 온전히 혼자라는 편안함과, 혼자 해결해야 하는 외로움을 함께 주었습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누렸던 많은 것들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결국 삶이란 좋은 경험만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경험을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 생각하니 좋지 않은 경험을 했을 때 제 마음속에 부정적인 감정이 부각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감에 따라 어느 순간 경험 자체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경험들 색깔과 진하기가 다르게 내 안에 저장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좋든 싫든 말이죠.



19년간 함께하다 작년에 떠난 우리 강아지 은비, 치매에 걸린 강아지를 지켜보며 힘겨워하던 가족들, 그 슬픈 경험들 제 삶에 아주 진한 노랑으로 저장되었습니다.


어떤 색깔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순간 내가 한 경험을 색깔로 떠올려보고 그것의 진하기를 더해 마음속에 저장합니다.


마음속으로 노란색 물감을 1초간 누릅니다.

빨간색 물감을 3초간 누릅니다.

초록색 물감을 5초간 누릅니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힘든 경험이더라도 조금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삶에서 하는 모든 경험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점점 다채로워지 있다고 생각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마다 한 경험들로 그 사람의
삶의 색깔과 진하기가 결정됩니다.

슬플 때, 불안할 때, 마음이 답답할 때, 외로울 때, 문제를 해결하면 또 하나의 문제가 다가와서 벅찰 때

저는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색깔 하나를 고르고 진하기를 정해 '경험의 추상화'를 그립니다.

단 하나도 똑같을 수 없는 세상 유일한 예술 작품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색깔로, 진하기로 삶을 그리셨나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유일하고 아름다울 겁니다.






#삶의 경험 #긍정적 경험 #부정적 경험 #감정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숨은 공간 찾기 - 미니 서재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