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리 Jan 08. 2024

망하는 회사의 비밀

<미친듯이 심플>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 틈 날때마다 책을 빌려서 읽고 있다. 최근에 켄 시걸의 <미친듯이 심플> 을 읽었다. 애플 창립자이자 CEO인 스티브 잡스의 오랜 마케팅 에이전트 담당자였던 켄 시걸이, 잡스가 모든 업무에 적용했던 심플함의 법칙와 실천을 담은 책이다. 나는 아이폰 유저이지만 스티브 잡스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그가 심플함과 창의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되었다. 잡스를 통해 내가 평소 자주 사용하는 물건과 관련된 책과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이 얼마나 재밌고 흥미로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심플함이란 것은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방향이나,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울수록 이루었을 때 더더욱 가치가 있고, 쉽게 깨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책에서는 잡스가 심플함을 이룬 과정을 11가지 법칙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소름 돋는 것은 내가 다니는 회사는 그 법칙에 거의 위배되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 제목처럼 망하는 회사의 거창한 비밀은 없다. 그냥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고 살펴보면 왜 회사가 발전이 없고 퇴보하는지 알게 된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외국계 소규모 회사(50인 이하)로 나는 당연히 실무자이다. 규모가 작은 회사의 특징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회사에 고용된 인원은 대부분 실무자이며 휴가나 장기 휴직 시 back-up 이 충분하지가 않다. 그래서 특히 매니저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매니저는 말 그대로 관리자이기도 하지만 업무에 구멍이 났을 경우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해결하고, 실무자의 부재시 100%는 아니더라도 반 이상의 back-up 을 해야한다. 하지만 이 회사는,


1. 실무자 대비 매니저가 너무 많다. 내가 있는 부서는 부서장 한명에 그 밑에 10명이 보고해서 결재 라인이 짧지만 바로 옆 부서는 매니저가 무려 5명이다. 물론 매니저가 제역할을 잘해낸다면, 많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매니저=승인권자, 컨트롤러라는 권위주의 생각이 만연해서 back-up을 전혀 하지 않고, 입으로만 해서 문제. 매니저 - 실무자의 수가 역삼각형 구조다.


2. 쓸데없는 회의가 너무 많다. 매니저가 자기 기분에 따라 모든 사람을 동원해서 회의를 소집한다. 당연히 회의는 짧게 끝나지 않고 몇 시간이 걸린다. 회의 내용은... 어떤 문제가 생김 -> 해결책을 찾자 이런 내용이 아니라 타부서 누구 때문에 내가 너무 화가 난다는 내용으로 몇 시간을 잡는다.


3. 그 일에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회의에 호출된다. 그리고나서 자신의 한풀이와 넋두리가 시작된다. 사람은 결국엔 다 자기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나도 알지만. 여기는 극강의 이기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책에서 인상이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잡스는 어느날 회의에 낯선 사람이 초대되자 긴말하지 않고, 이 회의에 상관이 없으니 나가 달라고 한다. 그렇게 최정예 멤버로 정말 효율적이고 필요한 회의를 하고,  그러면 실무자는 자신이 맡은 일만 잘 수행하면 된다.


4. 대부분 매니저가 다른 사람한테는 엄격하고 본인한테는 관대한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예를 들어 A건에 대해 직원 모두는 하지 않기로 합의를 한 상태인데, 얼마 후 매니저 본인은 A건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당연히 매니저 본인만 할 수 있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허용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매니저는 많은 권한을 가진만큼 본인에게 더 엄격하고 규칙을 준수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는 반대이다.


5. 기본 매너 부족... 이거는 정말 내 입으로 말하기도 드럽고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 트름을 대놓고 한다. 어쩌다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이거는 정말 비위가 상하다 못해 토 나올 수준의 용트름을 할 때도 있다.

 - 본인 자리에 음악을 틀어 놓는데, 어쩔 때는 정말 크게 틀어 놓아서 업무에 집중을 방해할 수준이다.

 - 감기 걸렸는데 마스크 안끼고 회의 참석에 기침도 당연히 손도 안가리고 한다.

 - 이메일 전달 시 최소한 한 줄이라도 무슨 내용인지 요약해서 보내야하는데, 냅다 "참조하세요" 란 말만 남긴채 이메일을 집어 던진다. 진짜 뭐 어쩌라는거냐? 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예전에 미국 동료가 이메일 에티켓 교육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메일 에티켓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기본 매너 교육도 필요하다.


위에 적은 문제들을 완벽히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교육할 수 있는 부분은 교육하고 정기적으로 팀원들이 매니저를 평가하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가를 낮게 받은 사람들은 매니저 타이틀을 내려 놓게 만드는 구조가 되어야, 회사에서 사소한 행동을 하더라도 조금 더 조심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본다.


PS) 친구들과 회사 이야기를 하는데, 몇몇 친구들이 나보고 "그래도 너네 회사가 나아." 라고 한다... 당연히 문제 없는 곳은 없다지만 우리나라 회사 수준이 아직도 이 정도인가? 씁쓸하다.


꼬질꼬질하지만 나의 20대를 함께 했던 아이팟


이 책을 읽고 나의 오래된 아이팟 클래식이 생각나 서랍을 뒤져 보았다. 겨우 찾았지만 아마 몇 년 전 홀로 운명을 달리한 것 같다. 그래도 회사 근처 개인이 하는 애플 병원에 데려가 보았으나, 부품도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한다하더라도 중고로 구하는 것이 더 쉽고 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다시 내 서랍 속에 고히 잠을 재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