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리 Jan 19. 2023

욕쟁이 와이프

"우리 와이프는 욕을 잘 안해요"

   내가 직장생활을 한지도 벌써 10년차에 접어 들었다. 대학을 막 졸업했을 당시에는 빨리 취직하고 돈을 벌고 싶었는데, 그 시절부터 무려 10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이직을 딱 한번 하긴 했지만, 그것도 쉴틈없이 바로 이직을 해버렸다.(내가 은근 쉬거나 노는 걸 잘 못한다ㅠ) 이런 면에서 나는 내 자신이 끈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직장생활만큼은 끈기있게 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연히 나도 직장생활을 항상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존버하면 퇴직금은 하루하루 쌓인다는 생각으로 다니다보니 아직까지는 괜찮은 듯 하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얻은 것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1. 내 보험료와 소비를 간신히 감당하는 월급 (하지만 내 소비는 맞고 월급은 틀렸다.)

2. 일하다가 종종 내는 꿀같은 휴가

3. 드러운 성질머리 with 욕


   특히 3번은 요새 '더 글로리'에서 일진 무리들을 보며 나 자신을 반성했다. 물론 그렇게까지 말끝마다 ㅆㅂㅆㅂ 거리는 것은 절대 아닌데, 몇 년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내 안에 화가 많아지고 열 받으면 쌍욕이 막 나올 때가 있다.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처음에는 욕도 자제하고 나름 이미지 관리를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는 성질머리...


   참고로 나는 평소 불의를 보면 잘 참지만 아가리 파이터이긴 하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멀리서 한 승용차가 전속력으로 달리며 우리를 거의 칠 정도로 스쳐서 지나갔다. 그때 나도 모르게 "미친 xx, ㅈㄹ도 풍년이네, 그래봤자 저기서 신호 걸리는구만, 아주 꼴x 이네." 하면서 욕을 마구마구 남발에 분노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당연히 남편도 백퍼 들었다.


   그리고 나의 욕 능력을 키워준 회사에서는, 다짜고짜 전화해서 우리회사와 관련없는 물품의 견적을 내놓으라는 무례한 사람들이나, 회사에서 일로 크고 작게 발생하는 얼굴 붉히는 일 등. 집이면 바로 누워 자거나 노래를 크게 틀어 놓는 등 순간 화를 다스리기 위해 조치를 취하겠지만 회사는 그게 안되니 자리에서 바로 쌍욕을 내뿜기 시작했다. 아마 옆자리 동료 분들도 들었을거라 확신한다.


   어느날 내가 욕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자 우리 엄마가 이런 말을 해주셨다. "예쁜 말 써야 마음도 예뻐지고 얼굴도 예뻐져. 힘들겠지만 그래도 욕을 덜 쓰려고 노력해봐." 하면 그 순간에는 알겠다하고 정말 몇 일간 욕을 안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이제와서 얼굴 예뻐져서 어디다 써. 그냥 얼굴 안 예뻐지고 욕 막 하면서 살래."


   그리고 언젠가 가족 모임에서 가족들이 장난으로 남편에게 "한국욕 할 줄 알아? 와이프가 한국욕 많이 알려 줬어?" 라고 묻자, 남편 왈 "와이프는 평소 욕을 잘 안해서 한국욕 많이 몰라요." 라고 한 것이다. 남편도 당연히 내가 욕쟁이인걸 알지만 사람들 앞에서 나를 감싸준 것이다. 여기서 또 나 자신을 반성하고 다짐했다. '여보, 당장은 힘들겠고, 욕을 차차 줄여 나가보도록 할게.'


하지만, 여전히 욕하는 사람보다 욕 나오게 만드는 사람과 상황이 더 나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