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미안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흔하게 서로를 위로해 주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보내며 해결이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애를 써야 하는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그 시간은 저절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는 동안 자주 꿈을 꾼다. 어느 날은 선명하게 꿈의 장면과 느낌이 기억나고 어느 날은 꿈을 꾸긴 한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 어느 날은 꿈을 꾸었지만 꿈을 꾸었다는 것을 무의식 안에서 먼저 기억을 지워버리기에 꿈을 안 꾸었다고 생각한다.
아주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꿈을 꾼다. 어른들도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어린아이들은 오죽할까. 어떤 꿈을 꾸었는지 선명히 기억이 난다 해도 아이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대상도 기회도 없다. 자신과 세상과의 연결이 안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유아기의 아이들은 자신과 부모,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경험하는 세상의 전부이다. 부모가 여행을 많이 데리고 다니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고 해도 아이들 세상은 부모가 대부분을 이룬다. 아니, 솔직히 부모가 아이들의 우주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누군가의 우주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깊은 감정을 다 헤아리기 어렵다.
나는 유아기의 어린아이들부터 성인들 까지 많은 사람들의 꿈을 해석하는 경험을 했다. 꿈을 해석하는 일은 꿈을 꾼 본인 스스로 하는 것이지 분석자가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꿈의 이야기를 찾는 길들을 알려주고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의 역할을 한다. 꿈의 의미를 찾는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은 경이롭고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가장 특별한 경우는 유아기의 어린아이들을 만났을 때다. 그 작은 손으로 자신이 기억하는 선명한 꿈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그림으로 표현해 낸다. 그리고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동안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속 감정들을 쏟아낸다. 놀라운 일이다.
내가 만났던 아이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공통적인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아이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어른들과 다를 바 없다. 내 마음을 아무도 몰라줄 때이다. 잠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누가 있더라?
우리도 그렇게 어릴 때부터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버려서 그때는 중요하고 강렬했던 그 감정을 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힘들게 느껴지는 그 감정이 '외로움'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렇게 처음부터 외로웠다.
[Pierre Bonnard, Young Girls with a Dog, 1910]
피에르 보나르의 그림은 어린 소녀를 바라보게 한다. 이 작품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시간은 저절로 흐르지 않고 아이들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아이들도 온 힘을 다 하여 제 삶을 살아간다. 어른들이 느끼는 모든 것을 아이들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