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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Feb 05. 2023

나이 40에도 앞머리를 고수하는 이유

앞머리로부터 해방을 꿈꾸며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장난기가 많은 담임선생님은 집안 사정으로 조퇴하려던 나를 50여 명의 반 친구들 앞으로 불러 세웠다.

내향적이었던 나는 갑자기 주목받는 상황 자체가 싫었지만 조퇴를 하고 먼저 집에 가는 친구의 사정을 얘기해 주려나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교실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장난기가 넘치던 선생이 말했다.


"ㅇㅇ이는 이마가 참 넓어 ㅇㅇ 야 머리 뒤로 이렇게 넘겨봐."


순간 이 거지 같은 상황은 뭐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그전부터 내 이마가 넓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내 삶이 불편하거나 놀림을 당하거나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이마를 까 보라니. 이 무슨 x 같은 상황인가.


아이들은 낄낄대고 웃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 발개진 얼굴을 바닥으로 내리깔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빌어먹을 그 선생이 내 앞머리를 뒤로 넘기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제지조차 할 수 없었다. 나대기 좋아하는 몇몇 남자아이들의 박장대소로 시작된 그 비웃음은 한참 동안 교실 안을 가득 메웠다. 내게는 억겁의 시간같이 느껴지는 형벌이었다.


수치스러움과 분노가 일었고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제야 그 장난기 많은 선생은 상황의 심각함을 깨달았는지 내 눈치를 살피며,


"장난친 거야, ㅇㅇ야 뭐 그거 갖고 그래 귀여워서 그런 건데."라는 또 한 번의 실언을 내뱉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아무런 대꾸 없이 교실을 나갔다. 그길로 집을 향해 뛰어갔다. 맞바람에 내 넓은 이마가 훤히 들춰진 걸 알고 그 와중에도 손으로 앞머리를 사수하며 눈물 콧물을 바람에 흩날리며, 그렇게 추한 모습으로 집으로 향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은 집에 없었고 나는 바로 전화기를 들어 엄마의 회사에 전화를 했다.


"엄마.. 으아아아앙.. 선생..선생님이 흑흑 나 보러 이마 넓다고. 얘들 앞에서 이마 보여주고 놀렸어. 아아아앙 내 이마는 왜 넓은 건데.. 으아아아앙 "


나는 오열했다. 무의식 저편으로는 엄마에 대한 원망도 한 방울 섞여있었다. 아빠가 아닌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일의 원인을 따지듯 말한 것도 그 이유이기도 했다. 나의 넓은 이마의 출처는 바로 우리 엄마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적잖이 당황하셨다. 그때 엄마가 내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수화기 너머로 몇 초의 정적이 있었던 것만 정확히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나를 위로해 주셨을 거다. 이마가 좁은 것보단 넓은 게 낫다라든지, 선생님께 얘길 해보겠다든지, 괜찮다는 얘기를 해주셨겠지. 이내 점점 울음이 잦아들고 전화를 끊었다.


침대 위에 한참 동안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때의 그 수치스러운 기억, 한 번도 내 이마를 누구에게 보여준 적 없었는데. 강제로 치부가 들춰진 상황. 선생에게 욕지거리가 나왔다. "xx 새끼..." 아마 내 생에 처음 발화된 욕이 아니었을까 싶다.


평소에도 장난기가 많아 내게 많은 장난을 걸었던 선생이었다. 하지만 그전의 장난들은 웃고 넘기기에 적당한 종류의 것들이었다. 선생에 대한 어떤 적대감도 없었고, 오히려 친근한 태도에 그간의 선생님들과는 다르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날의 그 장난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 내게 장난이 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좋아하는 남자아이도 있었고 예쁜 얼굴에 대한 동경, 예뻐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50여 명의 반 친구들 앞에서 내 치부를 들춰내다니.


마음은 계속 롤러코스터를 탔다. 화가 났다가 차분해졌다가 다시 욕이 나왔다가 울음이 나오기도 했다. 조용히 거울 앞으로 가 내 이마를 들춰보았다. 그랬다. 역시 넓었다. 내가 봐도 우스웠다.


'머리카락은 왜 저 위에서부터 나는 거야? 2센티만 더 아래에서 났어도 괜찮았잖아.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으면 걔는 어떻게 하지? 걔도 놀림당하면 어떻게 하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몇십 년 후의 나의 2세에 대한 상상으로까지 이어졌다.




40이 된 지금, 나는 아직도 앞머리를 고수한다. 결혼을 할 때도 앞머리를 까지 않고 식을 올렸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로 cgv 면접을 갔을 때, 영화관에서 일하려면 앞머리가 없이 쪽 찐 머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합격을 하고도 그 얘길 듣고 출근을 포기했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인생의 곳곳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의 기억은 끈질기게도 나를 따라다녔다. 선생의 말 한마디에 마치 내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 것 같은 전개. 내 의지대로 살아보겠다는 최근의 내 다짐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이 기억을, 나는 이제 놓아주고 싶다. 5학년 그때의 그 선생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넓은 이마가 우스워 보였을까? 아니면 정말 선생의 말대로 단지 귀여워 보였던 걸까? 그 귀여움을 반 친구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한참을 선생의 의도를 생각하며 원망하고 때론 이해해 보려고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생각이 어땠었든 간에, 나는 그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려고 한다. 그 말에 갇혀 아직도 움츠리고 있는 나를 밖으로 내보내 줄 작정이다.


과연 평생을 이렇게 살았던 내가 그 말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짐은 해본다. 이제는 벗어나 보겠다고. 타인의 말 때문이 아니라 내 생각이 그 말을 일부러 더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콤플렉스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렸던 것은 아닐지, 40 평생을 그 말의 감옥에 갇혀 선생을 원망했던 나의 고착된 생각을 이젠 내게로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해방될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인생이 아닌 나의 인생을 살기로 결정했으니까.


이렇게 나는,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또 하나의 콤플렉스로부터 해방을 선언해 본다.






참, 내 아이의 이마는 .. 다행히도 아주 적당한 넓이다. 심지어 내가 보기에 정말 예쁜 이마다. 나 때문에 아이의 이마가 넓으면 어쩌지 걱정했단 5학년 그때의 내게 안심해도 된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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