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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 살인 사건_1 달하 노피곰 도다샤

by 메이다니


1.

서울지방청 강력계 형사였던 이서진은 누구보다 현장에서 오래 버텨낸 형사였다. 여성 형사라는 이유로, 젊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장 하나하나에서 묵묵히 결과를 내며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그렇게 쌓아올린 실적 덕에 강력 2팀에서 1팀으로, 다시 본청 강력계로 이름을 올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서진은 본청 데스크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고참 형사들의 폭언과 조작, 과잉 진압을 당연한 일처럼 넘기는 분위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은폐와 방조를 더는 외면하는 게 범죄자를 잡는 것 보다 더 어려웠다. 내부 고발이라는 선택지에 선뜻 손을 뻗은 순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정당한 선택이 결코 안전한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는 것을.


20x3년도 4분기를 떠들썩하게 만든 내부 고발 사건은 언론의 주목까지 받으며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모두가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 했던 내부 고발자 서진은 3개월 동안 발령 대기 상태로 서울청을 맴돌았다. '일하는 경찰들의 수족을 끊어낸 무늬만 경찰'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후에도 그녀는 사표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서울청에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 결국 서울 본청으로 들어온지 6개월 만에 서진은 지방으로 발령을 받게 됐다. 중범죄자 앞에서도, 서진을 비난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늘 거침없는 그녀였지만, 지방 발령처가 확정되고 나서 서진은 내부 고발을 했던 사실을 조금 후회하기 시작했다. 발령을 받은 곳이 바로 정읍이었기 때문. 정읍은 그녀에게 단순한 지방이 아니었다.


정읍으로 향하는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서진은 출발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꽤 많은 탑승객들이 제각각 버스 짐칸에 짐을 올려놓고, 편하게 가기 위해 옷매무새를 다잡는다. 누군가는 여행의 설렘으로, 누군가는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으로 꽉 차있는 동안, 서진은 착잡한 마음에 눈을 질끈 감는다. 버스 출입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울렁. 정읍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출발한다. 결국 가게 되는구나.


정읍은 어머니의 고향이다. 어머니의 고향이긴 하지만 한번도 발걸음 해본 적 없었고, 머리가 크고 나서도 가보고 싶다 느낀 적이 없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8살 서진을 두고 도망간 어머니가 다시 자리를 잡고 삶을 이어가던 곳. 그곳이 정읍이었다. 버스를 타고 정읍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마음 속에 힘겹게 지워냈던 검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다. 괜히 목덜미를 신경질 적이게 긁고, 억지로 눈을 감으며 잠을 청해보지만, 눈을 감으면 지옥 같았던 어린 시절이 자꾸만 뚜렷하게 떠오른다.


엄마가 사라진 후 아버지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내야했던 서진은 성인이 된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전화가 온 낯선 남자의 통화에도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경찰이 된 후에 인명시스템 검색을 통해 어머니가 이미 사망신고가 되어있다는 사실, 다른 가정을 꾸려 낯선 남자의 아내로 사망했다는 사실. 자기도 모르는 이복 동생이 세상에 둘이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머니가 사망하던 날 그녀에게 전화가 온 남자가 바로 어머니의 남편이었을 것이다.


3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정읍 시외버스터미널. 조용하고 정돈된 거리, 늦은 오후 햇살 속에 흐릿한 외딴 도시의 윤곽이 비친다. 서진은 택시를 찾으려 승강장 안을 두리번 거린다. 그 사이, 대합실 벽에 걸린 TV에서 뉴스 앵커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오늘 오전 정읍사 공원에서 발견된 60대 남성의 시신 신원이 확인되며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경찰은 유가족 동의를 얻어 부검을 신청할 예정이며, 지난달 발생한 50대 남성 변사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밝혔습니다."



2.

서진이 정읍경찰서에 들어섰을 때 새로 부임한 형사를 맞이하는 분위기는커녕,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당직자 몇 명과 생활안전과 행정 직원들, 퇴근을 서두르는 경관 몇이 오가는 모습뿐. 대부분이 정읍사공원 사건으로 외근을 나갔다고 했다. 사람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서진을 반겨주는 분위기는 아니었겠지만, 서가 비어있으니 괜히 마음이 뒤숭숭했다. 서진이 배속될 형사 1팀의 팀장도 현장에 나가 있었다. 전화로 연락한 그는 '오늘은 정신없을 테니 내일 인사하자'며 퇴근을 권유했다. 하지만 서울청 내부 고발 사건과 휘말리면서 현장에 나간지 오래였던 그녀는 정읍 지리도 외울 겸 정읍사로 향했다.


공원 입구는 폴리스 라인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워낙 넓은 부지라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서진이 탄 택시가 수십 명의 경찰들이 공원을 수색하고 있는 현장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린 서진은 서울청 신분증을 내밀며 1팀 팀장의 이름을 말했고, 마지못해 들여보낸 경관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뚜렷했다.

현장엔 수십 명의 수사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서진은 팀장급으로 보이는 인물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1팀 팀장이 맞았다. 서진은 인사 대신 사건 보고서를 요청했고, 팀장은 옆의 형사를 눈짓으로 부른다. 지 형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두 장짜리 A4용지를 건넸다.

“오늘 아침 보고서라 부족한 게 많아요.”

보고서에는 정읍사 공원 화장실에서 발견된 64세 남성 강상현의 변사 사건이라고 적혀 있었다. 턱뼈가 부러졌고, 목이 꺾여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는 점. 발견 당시 온몸에 찰과상이 있었고, 화장실 안은 술 냄새로 가득했다는 점. 공원 입구 CCTV에는 피해자 외의 인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동네 주민들에 따르면 그는 평소 술버릇이 심했다고 한다.

“단순 실족사로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서진은 남성의 변사체 사진을 들여다본다. 출혈이 심한 턱과 꺾인 목은 눈에 띄었지만, 그녀의 시선을 붙잡은 건 목덜미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얇은 멍 자국이었다. 길고 얇은 막대기로 여러 번 같은 부위를 때렸을 때 생기는 특유의 상흔. 다른 찰과상과는 결이 달랐다. 서진은 괜히 그 상처가 눈에 밟혔다.

“목뒤에 저 상처는 막대기로 누가 때린 것 같지 않나요? 멍이 좀 든거 같기도 하고.”

“주사가 워낙 심한 양반이라 그러려니 해요. 늘 길바닥에 뒹굴고 전봇대 들이받고 그랬다더군. 그런 사람은 흔적이 넘치지.”

지 형사는 툴툴대는 말투로 서진에게 반박했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 결과 후에나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들이 지극히 평범해보인다고 느끼는 이 현장이 서진에게는 무척이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사건 현장인 화장실을 다시 한번 스윽 돌아보는 서진. 널브러진 담배꽁초들 옆에 흩어진 잿가루들이 보인다. 공중화장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향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기분이다. 정읍서 경찰들 속에 덩그러니 떨어진 그녀의 모습처럼, 향 냄새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한 채 훌쩍 사라져 버린다.



3.

다음 날 정읍서로 출근한 서진은 형사 1팀 팀원들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팀원들과 한 명 한 명 악수를 하면서 눈인사를 했는데, 묘하게 동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팀장은 서진에게 오늘 하루 1팀에게 맡겨진 사건들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흔하고 지루한 인수인계의 시간. 서진은 사건 파일들을 열람하면서 지난 달 있었다는 50대 남성의 변사사건에 대해 발견했다. 자살로 처리된 이 사건 역시 정읍사 공원에서 일어난 일이었는데, 이 남성은 정읍사 공원 가파른 절벽 밑에서 목이 꺾인 채 발견됐다. 사건 현장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서진은 누군가 남자의 시신 앞에 꽂아둔 것 같은 향초 꼭지를 발견한다. 다 타고 사라졌어야 하는 향초가 빗물 때문에 불씨가 꺼져 남아있다. 언듯보면 그냥 얇은 나뭇가지 같은 향초. 순간 어제 사건 현장에서 맡았던 향 냄새가 훅 맡아지는 기분이다.

그 순간 지 형사가 사무실로 들어온다. 팀장에게 강상현 씨의 부검 결과를 보고하는 그의 모습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있다. 턱에 가해진 충격은 실족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엔 어렵고 사망 직전 누군가와 다투면서 몸 싸움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 또한 목 근처에 보이는 길쭉한 상처는 길고 얇은 막대기를 이용해서 여러번 타격을 해서 만들어진 것 같다는 이야기. 지 형사의 브리핑이 길어질수록 팀장의 얼굴색이 어두워진다. 아무래도 팀장은 이 일이 단순한 자살 사건이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그는 골치 아프다며 효자손을 하나 들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지 형사는 단숨에 서진의 옆으로 와서 묻는다.

“목에 상처, 그거 어떻게 안 거예요? 부검의도 말하면서 좀 의아해 하던데.”

“예전에 본 적 있어요 그런 상처.”

“어디서?”

서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린다. 지 형사는 싱겁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책상에서 멀어진다.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선명해서 잊을 수 없는 상처. 그건 오래 전 힘 없는 아이었을 때 서진의 몸에 남아있는 폭력의 흔적이었다. 자신의 주폭으로 인해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버지는 힘없는 서진에게 괴랄한 방법을 동원해 상처를 남겼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저런 형태였다. 젓가락이나 얇은 플라스틱 부채, 혹은 가늘고 납작한 나뭇가지 표면으로 여러번 같은 곳을 치면 만들어지는 얇고 선명한 상처. 아니,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혹시 1차 유족 진술은 다 끝났나요?”

“아니, 아직 시작도 못했어요.”

“한 명도요? 사건 발생 3일 차인데?”

“그게...”

지 형사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린다.

“가족들이 진술을 거부하고 있거든요.. 아니 거부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별로 말을 하고 싶어하질 않아요.”

“구지 되게 수상해진다는 건 알고 있는 거죠?”

“그 집 할머니가 말을 못하게 하는 거 같더라고요.”

“할머니요?”

“강상현 씨 어머니 되시는 분이에요.”

“그분이 누구신데요?”



4.

서진은 지금 점심 식사를 하러 나왔다. 정읍에서 알아준다는 맛집 중 하나, 황금례 국밥. 변사자의 어머니, 지 형사가 말한 ‘할머니’가 바로 이곳 황금례 국밥의 주인장, 황금례 씨라고 한다. 정읍 맛집답게 내부가 엄청나게 클 것 같은 식당 앞. 아들의 죽음이라는 큰일을 치렀으니 휴업 중일까 싶었지만 식당 뒤에서부터 올라오는 수증기를 보니 운영 중인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서진을 뒤에 있던 지 형사가 말린다.

“서로 부르자니까 그러네. 이렇게까지 할 일이 아니에요.”

“안 오신다면서요. 가족들도 못 오게 하고.”

지 형사가 말릴 틈도 없이 서진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매장 안은 넓고 깨끗했다. 구수한 냄새가 풍겨오는 식당 안. 하지만 거대한 내부 안에 앉아있는 손님들이라곤 2, 3명 정도였다. 아무래도 지역 주민들 사이에 이 집 주인장 아들의 변사 사건 이야기가 쫙 퍼진 모양이었다. 들어오는 서진과 지 형사를 보더니 주방 안에서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짜증을 내며 걸어나온다. 지 형사는 은근슬쩍 서진의 뒤로 몸을 숨겼다.

“우리는 분명 할 말 없다고 했는데?”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정읍경찰서 형사 1팀 이서진 형사라고 합니다.”

“형사고 나발이고, 우리 집은 이제 경찰은 손님으로 안 받아, 나가 나가.”

서진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강한 저항이다. 이럴수록 더 수상해지는 걸 알면서도 이러는 걸까. 이건 ‘난 할 말 없어요’라기 보다는 ‘제발 내 이야기 좀 찾아서 들어줘요’ 같은 반응인데. 지 형사와 서진, 그리고 황금례 사장 사이에 충돌이 벌어진다. 80대는 되어 보이는 할머니의 힘이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 장정 둘, 셋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의 완력과 억센 손길. 뒤이어 식당 식구들까지 이 광경을 보고 주방에서 나왔다. 성인남녀 여럿이 한데 붙어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가족들은 우악스럽게 서진의 멱살을 움켜진 황금례 사장을 떼어 놓으려고 애를 쓴다. 할머니 이러지마, 어머니 그만 하셔요. 황금례 사장에 비하면 가냘픈 그녀들의 손이 엉겨 붙는다. 서진은 억척스런 황 사장의 손길을 버텨내며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강상현 씨를 살해한 사람은 가족분들이 아니에요!”

그 순간 서진과 지 형사를 밀어내던 손에서 맥이 풀린다. 하느님 아버지. 외마디 비명과 함께 황금례 사장은 서진의 옷자락을 다시 힘주어 움켜잡았다. 방금 전까지와는 다른 절실함이 묻어나는 손. 그리고 황금례 사장은 전신에 힘이 빠진 듯 스르륵 바닥에 주저 앉아버린다. 서진은 옷매무새를 빠르게 다잡고 황금례 사장과 눈을 맞추기 위해 몸을 낮춰 앉았다. 불안한 듯 흔들리고 있는 황금례 사장의 눈에서 분노와 억울함이 함께 어른거린다. 이제 그녀에게 진짜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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