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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나쌤 Jun 28. 2023

웃기네. 피아노도 칠 줄 모르면서.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


며칠 동안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왜 아파?"

남편이 물었다.

"잘 모르겠어."

핑계를 댔다. 결코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잘 하고 싶은 마음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을 때 늘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팠다. 입맛도 떨어지고 뭘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먹고 난 후엔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


그래서 이유가 뭔데?'

내 마음에게 묻는다.

'그게 말이지. 거창하게 꼭 작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고... 단순히 글을 쓰고 싶어. 글을 잘 쓴다고 말할 수 없지만 글 쓰는 게 좋거든.'

'그럼 써.'

'그래서 쓰고 있어. 썼다고. 그런데 글만 쓰고 살 수 없잖아. 내가 전업 작가도 아니고. 글 좀 써 보자 마음먹고 책상에 앉으면 그때부터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게 보여. 애들은 왜 그렇게 엄마를 찾아대는지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애들한테 짜증만 늘어가. 그렇다 보니 나는 나쁜 엄마인가? 자괴감이 들어.'



엄마는 작가가 될 수 없는 걸까?

일하는 엄마는 작가가 될 수 없는 걸까?

나는 엄마로만 살아야 하나.

애들도 이 정도면 많이 큰 거 아닌가?

나는 언제까지 아이들 뒤치닥만 하다가 시간만 보내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그렇다고 내가 엄마 역할을 되게 잘하는 것도 아닌데...

내 안에 자라다만 욕망이 채 피어나지도 못한 채 내 안에 갇혀서 꿈틀거리다가 결국 꽃은 피워내지 못하고 가시만 자라서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향해 날선 말과 행동으로 튀어나온다.

이런 내가 싫다.





어제 한 작가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

에세이를 쓰시고, 이번에 첫 소설을 내신 작가님이다.

작가님에게 첫 작품에 대한 에피소드와 작품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작가님은 소설을 6평짜리 방에서 완성하셨다고 한다. 혼자 책 읽다가 글 쓰다가 온전히 작품에만 골몰한 시간이었다고 하셨다.

부러웠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주어지면, 작품 하나는 써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비록 졸작이 될지라도.

대단한 글을 쓰고 싶은 게 아니다.

솔직히 자신도 없다.

하지만 내가 쓰고 있는 글을 꼭 마무리해 보고 싶다.

그게 나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꾸 미뤄진다. 산만한 나의 생활이 짜증스럽다.





피아노를 칠 줄 모른다.

클래식을 많이 듣는 것도 아니다.

가끔 듣긴 한다. 나도 모르는 나의 취향. 첼로와 피아노 연주 음악이 참 좋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OST를 듣게 됐다. 오래전에 봤던 영화라 내용은 기억이 났다. '피아노 배틀' 장면을 보면서 몸에 소름이 돋는다. 피아노의 해머가 클로즈업 되면서 나의 심장 박동과 함께 요동친다. 그리고 내 마음을 사로잡는 쇼팽 왈츠.

내 마음속의 손가락이 쇼팽의 왈츠를 치고 있다.

웃기네. 

피아노도 칠 줄 모르면서.



어쩌면 지금 내 마음이 바로 이게 아닐까?

글도 쓸 줄 모르면서 글을 읽을 때마다 나도 이렇게 쓰고 싶어.

재밌는데?

나도 쓸 수 있어. 가 아니라. 나도 쓰고 싶어의 마음이 크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면 어쩌면 들지 않았을 마음일지 모른다.

많이 읽다보니 쓰고 싶어 졌고, 그래서 쓰고 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6평짜리 방이 너무 부러웠나 보다.





3일 내내 쓰고 있는 소설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 사이 책은 참 많이도 읽었는데, 클래식도 엄청 듣고 있는데. 글은 한 글자도 쓰기 싫어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누가 보면 내가 전업 작가인 줄. 슬럼프가 와서 딴짓하면서 힐링하는 중인 줄.

어이없네.

학원도 시험 기간이고.

아이들 공부도 봐 줘야 하고.

부모님이 아프시다고 하니 병원도 같이 가야 하고.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일밖에 없으니 가장 먼저 손을 놓아버릴 수밖에.

그래서 괜히 울컥한다.

"넌 결혼하기 싫으면 하지 마. 결혼해도 아기 낳기 싫으면 낳지 마."

괜히 12살 딸에게 알아듣지도 못하는 훈수를 둔다.

딸은 갑작스러운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그런 게 있어! 네가 뭘 알겠냐?"

내 딸은 이런 마음 쭉 모르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의 ost를 들었다. 영화보다 ost가 더 좋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음악실을 철거할 때 주걸륜이 피아노를 격정적으로 칠 때 나오던 음악이 나온다. 음악의 힘은 놀랍다. 듣다 보니 그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주인공이 느꼈을 감정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간절함과 슬픔과 두려움. 자신의 죽음보다 더 두려운 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이제 끝.

두서없이 이말 저말 다 했으니 속이 후련하다.

주제도 목적도 없는 글이었으나 나는 이 글을 씀으로 또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길 바란다.





언젠가부터 누구에게든 푸념을 늘어놓는 게 싫다.

하지만 요즘엔 내 안의 말들이 쌓여서 어디든 한 번은 풀어 놓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오늘만 내 스스로 허락한다. 

결코 우울하지 않기. 

쓸데없이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는 내 스스로 다짐하고 다짐하는 바이다. 

지켜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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