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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나쌤 Jan 31. 2023

딸과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내 발로 걷어찼다


"엄마, 이것 좀 봐봐. 내가 만든 거야."

"응, 그래. 잘 만들었네."

올해 12살이 된 딸은 꼼지락꼼지락 그리고 오리고 만들기를 좋아한다. 딸과 같은 방에 책상을 나란히 사용하는 이유로 딸은 노상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쳇, 쳐다보지도 않고 영혼 없네. 진짜, 엄마 너무해!"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흘깃 쳐다보고 엄지 척과 함께 다시 한번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워킹맘...

저녁 먹고 이래저래 뭐 하는 것도 없이 9시가 넘어야 겨우 내 시간이 주어진다. 잠도 줄이고 시간 활용을 최대한으로 해 보려 하지만 늘 시간에 쫓긴다. 남편 말대로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면서 책상 위에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하루를 초 단위로 나누어 써도 매일 시간이 모자라고, 늘 마음이 조급하다. 가족들에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나의 표정과 행동에는 늘 조급함이 베어 있다.



"엄마, 내가 재밌는 얘기해 줄까?"

"응, 해 봐."

딸은 자기가 상상해서 지어낸 이야기라며 정성스럽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난 집중해서 듣고 있지 않다. 엄마로서 딸의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쌓여 있는 일들을 해치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매 순간 충돌한다.

"엄마? 엄마! 듣고 있어?"



"엄마, 내가 책 읽어 줄까?"

"아니, 괜찮아. 다음에. 다음에 읽어 줘."

순간 딸의 얼굴에 서운함이 스친다. 그러다 이내

"아냐. 괜찮아. 다음에 읽어 줄게. 엄마 바쁘니까."

순간 바쁘게 움직이던 내 손과 마음이 얼어붙는다.



이건 아닌데.

정말 이건 아닌데.

다음이 있을까?

올해 12살이 된 딸이 엄마에게 책을 읽어 준다고 한다. 이렇게 소중한 기회 롤 발로 걷어차는 엄마. 그게 바로 나다.

순간 기분이 엉망진창이 된다.

다음은 없다. 절대 없을 것이다.



엄마의 거절이 익숙한 듯 딸은 곧 자기 일에 집중한다. 대화는 끊겼다. 딸은 더 이상 말이 없다. 영혼 없는 대화에 흥미가 떨어진 듯. 이 대화의 패자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이토록 큰 것을 잃어버린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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