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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밤클라쓰 Aug 07. 2023

인간의 이기심 다섯 번째.

먹고살기 위한 치열한 전쟁 그리고 불공평함.

1) 나는 예전에 바이럴 마케팅 회사에 아르바이트를 몇 주간 다녀본 경험이 있다. 


회사에 들어가자, 인터넷 공간에서 분위기와 여론을 조작하여 구매를 유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들키지 않기 위한 몇 가지 절차를 거치고 작업을 시작했다. (블로그로 따지면 어뷰징 되지 않기 위한 설정이라 보면 되겠다.)

불법과 합법의 아리까리하고 아슬한 경계에 있지만 엄밀히 불법은 아닌, 바이럴 마케팅 업계에서는 전혀 유별나거나 이상하지 않은 공공연한 일들이었다.


일을 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유는 내가 소비자라면 마케팅 업계의 이런 교묘한 장치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로 쉽사리 속아 넘어갔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장치는 너무 교묘하고 기만적이어서 일을 하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실제로 그 일을 접하기 전까지, 바이럴 마케팅이라는 분야에 이런 장치들이 산재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주위 같은 소비자 입장인 사람들에게서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소비자 기만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요즘 경제이론을 필사하며 느끼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학문은 소비자를 구매까지 이르게 하기 위한 치열하고 다양한 장치 싸움이라는 것이다. 불법과 합법으로 가를 수 없다면 기만과 치열함의 차이는 무엇일까.


솔직하게 불편함을 말씀드리고 그만두었다.


2) 20대, 인턴으로 들어간 제조 회사에서 CS팀 업무를 돕게 되었다. 


상사의 지시로 회사 제품의 리뷰 댓글을 소비자인 척 작성 (해야)했다.


3) 부업으로 블로그 원고 작성 일을 계약한 적이 있다.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내 불안한 예상이 또 적중했다. 이곳 또한 필요하다면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경험한 것처럼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를 들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에 가봤다고 하면서 그 장소가 좋았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업은 내 생존의 문제가 달린 일이 아니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계약은 곧바로 파기되었다.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 이상한데 광고는 광고로만 보아야 하지 죄책감을 느낄 일은 아닙니다."


정직함이란 무엇일까? 융통성이란 무엇일까?


꽌시

중국의 꽌시라는 관행이 떠오른다. 

꽌시라는 관행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한 사람이 득세하면 그 주변사람이 그 득을 본다."

연줄을 통해서 더 빠르게 승진하거나 이득을 본다는 이야기인데 이 과정에서 뇌물이 오가기도 한다.

(물론, 꽌시가 존재하게 된 데에는 여러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있다. 이것들을 고려하면 이렇게 단편적으로 정의할 수만은 없는 - 중국에서는 - 불법이 아닌 관행이다.)


문헌에 기록된 다음 자료에 의하면 시대에 따라서 꽌시의 의미가 변해오기도 했다.


Yang, 1994 공동이익과 이익에 기초한 서로 다른 관계에 기반 한 사람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

Bian, 1994 사람 간의 호의 교류 촉진할 수 있고 잠재력을 가 지고 있는 이원적, 특별한 감정적인 넥타이

Bian & Ang, 1997 꽌시는 도우미, 친밀감, 친숙함에 관한 것

Chan et al., 2002 꽌시는 우정과 은혜가 주는 것이다.

Wong et al., 2003 꽌시는 종업원 간, 종업원과 상사 간의 공동 활동에 관한 것

Lee & Dawes, 2005 꽌시는 mianzi(체면)와 renqing(호혜)에 관한 것

Chen & Tjosvold, 2006 서로의 적절한 행동과 대우의 질적 관계를 결정함

Cheung et al., 2009 꽌시는 개인적인 감정에 관한 것

Yen et al., 2011 꽌시는 신뢰에 관한 복잡한 사회 구조이며, 그 자체의 논리와 형식을 가지고 중국 사회의 사회 구조를 구성함

※ 참고문헌 : 꽌시와 비윤리적 친조직행동: 종업원이 지각한 상사의 사회적 책임 활동 수준의 조절효과(리우완쥔, 2021)


하지만, 분명 꽌시라는 관행으로 인해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보고 불공평함을 느낄 것이다.

그 대상은 연줄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고 그 사람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 이유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꽌시라는 관행이 너무 멀게 느껴지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아는 의사가 있으면 더 빠르고 친절하고 자세히 진료를 볼 수 있다. 이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로 인해 다른 누군가의 진료 순서는 좀 더 뒤로 밀려나게 된다.


전관예우나 촌지문화에서도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전관예우: 전직 판사 또는 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하여 맡은 소송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등 특혜를 주는 일.


공평함을 표방하는 법조계에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2018년에 대법원이 그간 가져왔던 “사법부 전관예우는 없다”는 기존 태도를 접고, 전관예우 관련 실태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80년대 아니 90년대 까지도 촌지를 주지 않아 교사가 학생을 (당연하게) 차별대우 했다는 사례가 자주 들려왔다. 내 주변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직접 전해 들었다.


2천년대 초반에 사립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의 학창 시절, 당시 우리 학급에서는 학급을 위해 쓴다는 명목으로 학부모 한 사람당 한 번에 10만원 이상이 넘는 금액을 돌아가며 차례대로 걷어 모아 자녀의 학급에 전달했다. (학부모들끼리 합의한 것인지 교사와 함께 합의한 것인지 아니면 교사나 일부 학부모가 종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교사가 관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한 번으로 끝났는지 계속해서 이어졌는지 더 많은 금액을 걷었는지까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나는 당시 어머니가 학교 이야기를 하며 그런 '우리 반만의 비공식적인' 학급비를 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의 말에서는 그런 관행에 대해 어떠한 감정이나 거리낌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하는 학교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그럼, 돈이 없는 가정의 학부모는 어떻게 그런 (소위) '비공식적 학급비'를 내지?' 하는 생각을 했다. 내지 못하는 형편을 다른 학부모 모두가 이해해 준다고 할지라도 (학부모들이 혹은 선생이) 공식적으로 그런 규칙을 정했다면, 누군가는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찜찜하고 불편해졌다. 또 당시에 표현하진 않았지만 그것을 아무런 불편함이나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어머니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어디까지가 기만이고 어디까지가 괜찮은가?


어쩌면 먹고살기에 치열한 시장 바닥에서 여유로운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그렇게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마땅치 않게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퇴사를 하고 계약파기가 된 이전의 경험에서 내가 생존을 담보로 했어야 했다면 나의 선택은 그대로였을까?)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이런 불합리한 일을 겪어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위에서 하라고 했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했었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불편하고 찜찜한 느낌. 당신이 어쩐지 불편하고 찜찜한 느낌이 들었을 이유는 누군가는 반드시 그런 행동으로 인해 불이익을 얻거나 불공평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럴 때마다 당신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떤 마음이 들었는가.


고통스럽고 불편한 글쓰기이다. 내가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되는 순간이 인간의 이기심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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