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로 Nov 07. 2023

한 끼 20만 원이면 먹을 건가?

생각만 해도 자꾸 웃음이 나고, 기대감에 아내한테 자꾸 말을 건넨다. 내일 저기서 먹을 거다. 굉장히 비싼 저녁식사다. 멋지지? 뭐가 나올까? 괜스레 말을 걸고 웃음 짓는다. 게다가 몰라.. 혹은 그러게... 하고 아내가 대답하면 생각이 없다는 둥, 정말 가보기 힘든 곳이다.라고 설레발친다.

드디어 흰 재킷을 수려하게 차려입은 웨이터가 안내하는 둘만의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나무로 얽어서 입구를 빼고는 둥그렇게 병 모양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보통의 양식당처럼 빵을 한 조각 갖다 준다. 조금 기다려야 하나 보다 생각하고 빵을 잡는데 벌써 애피타이저가 한 세트 나온다. 아까 우리를 안내했던 멋진 총각이 메뉴 소개를 한다. 소꿉장난 하는 듯한 모양으로 아주 조금씩 나눠 담은 요리들이지만 매우 복잡하고 정성스레 만들었단다. 이렇게 저렇게 재료를 쓰고 요리를 한 거라고 설명하는데 이름도 낯설고 그래서 어떤 맛일지 상상이 안되니까 그저 네~네~하며 얼른 먹을 생각만 하며 웃음 지으며 끝나기를 기다린다. 자신 있는 목소리로 설명을 마친 웨이터가 등을 보이자마자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거 없이 포크를 들이대려다 서로 눈치를 나누고 점잖게 천천히 격식 있게 맛을 본다.

정말 맛있다. 여태 살면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다. 신선한 회 아래에서 잘 익은 젓갈 맛이 바쳐주고 과일을 얇게 켜서 그 사이에 두었는지 시원하게 아삭 베어지며 달콤함도 풍기는데 이 모두가 한꺼번에 어우러져 맛있다.

계란은 그냥 삶은 줄 알고 계란 크기에 맞게 티스푼처럼 생긴 숟갈로 한 숟갈 퍼먹었는데 깜짝 놀랐다. 퍽퍽한 삶은 계란 맛이 아니라 간드러진 맛이라고 할까... 부드럽고 촉촉한 푸딩 같은 식감이 온몸을 한번 소스라치게 만든다. 정리하러 온 웨이트리스한테 어떻게 삶으면 이렇게 되는지 요리사한테 물어봐달랬더니 별도로 요리를 해서 계란에 담을 거란다. 그럼 그렇지... 계란을 어떻게 삶더라도 이런 맛이 나올 수가 없지... 그제야 무릎을 치며 궁금증을 접고 다시 고급스러운 격식 있는 분위기에 빠져 들었다. 

다음은 뭐가 나오려나 기다리면서 이렇게 먹으면 배부르지도 않겠다며 마음속으로 어린애들처럼 포크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다. 이번에는 너무 정성스레 만든 모양이라 차마 손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단품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모양을 부수기는 싫고 그렇다고 한입에 다 넣기는 부담되는 크기라서 어떻게 먹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3~4 등분해서 먹는 게 좋다고 추천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칼을 들이댔더니 아니나 다를까 정교한 모양이 다 부스러졌다. 맛은 무화과의 단맛과 찹쌀 찹쌀떡의 닷만이 더해져 단맛제곱이었다. 

밥 먹기 전에 이런 걸 줘도 되나? 할 정도로 후식에 가까운 메뉴인데 아마 과일을 주 재료로 생각해서 애피타이저에 포함시킨 거 같다.



또 기다리는 시간에 이제는 다른 생각을 해본다. 이런 식으로 먹으면 최소 30분에서 한 시간은 걸릴 건데 매번 다음 음식만 기다리며 멍 때리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뭔가 얘기하며 기다려야겠다고 서로 대화 거리를 찾아본다. 이러한 마음을 아내한테 얘기했더니 그래 같이 얘기 나누며 기다리고 음식도 천천히 즐기면서 먹어보자고 한다. 얘기를 시작하니 먼저 결혼해서 고생했던 시절과 지금 이런 저녁을 즐기는 시간을 비교하여 꿈만 같다는 생각을 나눈다. 우리 고생도 많이 했고, 이래저래 성장도 많이 했다고 자화자찬을 한다. 기분이 너무 좋고, 어쩌면 삶에 익숙해져 있는 사이인데 새로이 정겹게 느껴진다. 단칸방 시절과 아들이 어렸을 때 감기로 열이 많이 나서 어쩔 줄 몰라 발가벗기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바람 쐬어 식혔던 시간.. 밥 얘기는 뒤로하고 이 얘기를 써도 한 편의 글이 될 것이다. 그러다보니 벌써 메인 요리가 나왔다. 메인인데도 여전히 양이 적다....ㅎㅎ

그렇지만 먹는 재미가 있다.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그러면서 배는 불러오고 있고 얘기도 한참 무르익어 간다. 언제 이렇게 얘기해봤나 싶다. 생각해 보니 결혼 전에 데이트할 때 이렇게 아내의 얘기가 끝날 때까지 들어주고, 또 맞장구쳐가며 말을 이어갔던 기억이고 이후에는 필요한 얘기만 하거나 생활고에 찌들어 툭하면 싸우기 십상이었다. 특히 오늘은 본가와 처가에 대한 집안 얘기를 해도 서로 듣고 답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참 쉽게 얘기를 꺼낼 수 없는 부분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다니 감동이다.


무엇이 우리를 대화의 마당으로 불러냈을까? 왠지 떠들면 안 될 거 같고 격식을 갖춰 얘기해야 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자리가 먼저인 거 같다. 다음은 간간이 다녀가는 잘 차려입은 종업원들이다. 섣불리 대하기 어렵게 차려입어서 그런지 좀 격이 없게 얘기 나누고 있다가도 잘 차려입은 종업원이 다가오면 목소리 부터 낮추고 격을 갖춘다. 몇 차례 반복을 하니 이제는 자연스레 격을 갖추고 조용히 대화하는데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 얘기를 듣게 되고 다 듣고 얘기하니 싸울 일도 없는거 같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서 마지막 디저트가 나온다.

맨 먼저 거품에 싸여 내용물이 뭔지 모르는 요리가 나왔는데 탄산 그리고 상큼함을 안겨주는 레몬 맛 그리고 속에 약간 씹히는 내용물이 잘 어우러진다.

다음은 과자와 아이스크림이 어우러진 모양은 다르지만 맛으로는 흔히 만날 수 있는 디저트다. 음료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젤리와 케이크 조각도 함께 나왔다.

이쯤에서 묻는다. 가격이 20만 원이라면 돈을 내고 먹겠는가?

아마 오늘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당연히 그 돈이면 골프를 한번 치겠다며 절대 안 먹을 거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함께한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과 싸우거나 거칠게 얘기하지 않고, 또 상대방의 얘기에 집중하고, 더군다나 끝까지 다 듣고 나서 얘기하는 등 한마디로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 시간 값을 지불한다고 생각하면 내 돈 내도 먹을 것이다.


세상에 많은 것들의 값어치가 각양각색이듯이 음식도 이번에 아내와 함께 경험하고 보니 비싸다고 손사래만 칠게 아니라 가치 기준이 다른 것을 경험해 보면 좋겠다. 이런 분위기에도 대화가 안 되는 젊은 때가 있기도 했다. 혈기왕성하여 모든 분위기를 거슬러 자기주장에 여념이 없었던 시절도 있었기에 한 번은 시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아직 아니다 싶으면 두 번 다시 안 하면 될 것이고 우리처럼 대화의 장이 펼쳐진다면 음식 값을 지불하는 게 아니라 대화 시간을 마련해 준 코칭이나 카운슬링 값을 지불한다고 생각하며 즐겨 먹을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 전략"을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