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하나님 이야기 ③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지만, 언제 응답받을지 알 수 없는 기도 중 하나가 "배우자 기도"라고 합니다.
그때, 썸(?)을 타고 있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모임 뒤풀이가 끝나고 저희 집에서 같이 술을 먹게 됐어요. 거실에 있는 식탁에 노트 하나랑 인바디 검사지(그게 여기 왜 있냐고!)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그거 봐도 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거기 있는 노트? 그건 필사노트라 상관없어~ 어차피 숨겨야 될 일기장, 기도노트는 이런 데 없지~"
"기도 노트? 누나 크리스천이야?"
"나? 뭐 다니는 교회가 없긴 하지만 말씀 읽고 기도하고 하면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 친구는 인바디 검사지를 보고 싶어 했는데, 저는 그게 거기 있던 필사노트라고 생각했던 거죠. 왜 갑자기 묻지도 않은 그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기도노트가 있는 걸 자랑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당시 제 기억으로도 썸남은 꽤나 많이 놀란 듯했습니다.
구 썸남, 현 남친과 저는 약 두 달 가까이 썸을 탔습니다. 사실 썸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했죠. 초반부터 저랑은 찐 남매처럼(남친의 누나와 제가 동갑이고, 제 남동생과 남친이 동갑입니다) 지내자고 선을 그었던 터라 제가 이 사람이랑 잘 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애매한 건 딱 질색이었고 그래서 매일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흐지부지 썸을 타다가 단둘이 만난 첫날, 여행을 갔는데 술을 마시면서 남친이 그러는 거예요
누나랑은 연애는 잘 모르겠고, 바로 결혼할 거 같아!
이게 무슨 전개인가... 싶으시죠? 제가 두 살만 어렸어도 이런 얘기했으면 얘 뭔가... 하고 무시했을 거예요.
더 웃긴 건 제가 그날 여행 가는 짐을 챙기면서 김치랑, 언젠가 해준다고 약속한 감자전을 해주겠다고 감자랑 치즈 같은 거 챙기면서 (강원도 가는데 충청도에서 감자 챙겨가는 1인 ㅋㅋ)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아... 이거 보면 얘 나한테 결혼하자고 할 거 같은데...?
그렇게 누나랑은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던 구 썸남과 저는 갑작스럽게 결혼 준비(?)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과거의 저를 보면, 썸 같은 거 썩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좋으면 좋고 아니면 아닌 거지 애매한 관계 유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썸남은 경기도 북쪽에, 저는 충청도 그것도 서쪽에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니 애당초 연애를 하거나 만날 생각을 하는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이 글이 뭐가 하나님을 만난 거라는 거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이게 하나님이 아니면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커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선 서로가 항상 기도하던 그 이상형이에요.
구 썸남, 현 남친의 이상형
1. 말이 잘 통하는 사람, 이거 엄청 애매한데 저랑 썸 탈 때 하루에 두 세 시간씩 통화했거든요. 그것도 엄청 신나서...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 잘 통하는 사람이 있어서 신기했대요.
2. 믿음이 있는 사람, 남친은 제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고 합니다.
3.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 술 마시면서 속 깊은 이야기도 많이 하고 한쪽만 먹으면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 그래도 좀 마시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대요. 저희는 둘 다 술을 즐기는 편입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지만 이 정도만 공개합니다. )
저의 이상형
1. 자격지심이 없는 사람, 남친은 자격지심이 없습니다. 꿈이야기를 하거나 어이없이 당당한 저를 귀여워해주는 편이에요.
2.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 친구 같은 사람을 원했는데 남친과 저는 티기타가가 잘 됩니다. 개그 코드가 잘 맞는 거 같아요.
3.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사람, 처음 인사 갔을 때도 그렇고 양가 상견례 할 때도 그렇고 이 부분은 저희 부모님께서도 인정하셨습니다. 양가의 가족분위기가 비슷해요.
제가 크리스천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게 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남친이 저에게 물어보게 된 일이나, 과거의 저라면 절대 받아주지 않았을 썸이라던가, 어이없이 첫 여행에서 결혼을 얘기하고 준비했다던가. 만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사람을 서로의 부모님께 소개했을 때 모두 너무 기뻐하며 찬성하셨다던가. 이런 타이밍은 사람이 인력으로 하려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들이 아닌 거 같아요.
제가 요즘에 농담처럼 "내가 두 달만 너를 먼저 만났어도 우리는 시작도 안 했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진짜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거든요. 심지어 예비 시어머니께서 매일 "돕는 베필을 얻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셨다는데 저를 보시고는 기도를 들어주셨다면서 좋아하셨어요.
만남부터 결혼 준비 시작까지 이렇게 고속도로라고?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아무런 제한 없이 진행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이것이 하나님이 하신 커플매니징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제한이 없으시니까요. (물론 결혼 준비 중에는 시련이 있긴 합니다. 그건 또 다음 이야기에 풀어지겠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