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뭐 먹고살아?

채식 지향 생활 5년 차의 이야기

by 리무

나의 점심시간을 같이 보내는 단짝은 회사 동료가 아닌 사이버 주치의다. 바로 최근 저속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후 인생 2막을 시작했다는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님이다. 정희원 교수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내가 먹고사는 방식에 대해서 '잘하고 있다'라고 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님은 초고령화시대에 침상에 누워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저속노화 생활 습관을 유지해야 한다며 식단, 운동,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중 식단은 지중해식 식단과 같이 과일, 채소 위주의 가공되지 않은 자연식을 권장한다.


채식을 지향하며 생활한 지 만 5년이 되었다.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하겠지만 응원보다는 조롱을 더 많이 듣는 게 현실이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고, 평소에 즐겨 먹지 않는다고 하면 동료들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봤다. 어렸을 적 내 몫의 고기반찬은 챙기지도 않던 가족마저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나에게 고기 좀 먹으라고 했다. 좋은 마음으로 채식을 하던 나를 가장 찔렀던 것은 주변의 '평가', '판단'이었다.

"채식한다면서 왜 라면 드세요?" 라며 라면 한 컵에 나를 검열하던 동료. 샌드위치를 주문할 때 치즈를 빼달라던 나에게, "넌 밖에서 밥 먹을 때 힘들겠다"라며 고기를 우걱우걱 씹는 입으로 안타깝다고 하는 선임. "우리 회사에서 네가 건강에 제일 유난이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 상사까지. '나는 이렇게 먹어요'라는 지향점을 알린 것이 누군가에겐 계속해서 관찰, 판단,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지향점으로 꾸준히 가기 위해선 동지가 필요하다. 발톱의 떼보다 적었지만 동지가 없진 않았으니, 바로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본부장님이었다. 그분은 50대 기성세대 남성인데, 최근 동물권, 자연주의,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2030 여성들이라는 점이라는 사실을 보면 가뭄 속의 콩과 같은 희귀한 케이스다. 본부장님은 대학 시절부터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후 채식을 지향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현저하게 낮았으니, 본부장님을 향한 시선은 내가 지금 맞고 있는 시선보다 훨씬 날카로웠을 게 분명하다.


젊은 시절의 본부장님은 치기 어린 마음에 도살당한 소와 돼지의 사진들을 주변에 보여주고 다녔다.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채식을 하는 게 왜 잘못되었냐고 주변에 말했다. 점차 채식의 지향점과 방식이 쌓인 본부장님은 체중조절 겸 조용히 견과류나 과일로 식단을 대신했고, 동물성 조미료까지 깐깐하게 따지지 않았다. 떡볶이나 라면 등 덩어리 고기만 아니면 간단한 음식은 잘 드시곤 했다. 지금은 동물권 단체에 들어가 활동하고 계신다. 대학시절부터 30년 간 지켜온 가치관이 가장 적극적인 지향점에 이른 것 같았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선 유연함이 필요하다. 나는 체질상 채식이 잘 맞았고, 이 가치를 여전히 지향하고 싶어 여러 원칙들을 세워 왔다. 첫째, 과도한 채식보단 자연식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자연식 또한 채소와 과일, 곡물 위주의 식단이지만 약간의 생선과 가금류를 허용하고 있다. 채식의 완벽함 보단 영양소의 균형이 중요하다. 100% 비건식이어도 과도하게 가공된 음식은 죽은 음식과 다름없다. 동물성 식품을 약간은 허용하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한 음식을 지향하는 것이다.


둘째, 사회생활을 할 땐 육류를 너무 가리지 않는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때, 외부업체와 미팅을 할 땐 나의 지향점보단 즐거운 식사를 위한 메뉴가 무엇인지를 우선으로 둔다. 깨끗한 식단은 집에서 혼자 먹을 때 열심히 지키고, 타인과의 식사는 메뉴 상관없이 맛있게 먹고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세 번째다. '누가 뭘 먹든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채식 습관을 비아냥 거렸던 사람들 대부분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았다. 처음 타인으로부터 날카로운 말을 들었을 땐 '그래서 넌 얼마나 건강하게 먹고사는데?'라는 말이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올 뻔했다. 만약 내가 똑같이 타인의 식습관에 대해 조롱 섞인 말을 했다면 그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먹는 것은 존엄한 일이다. 채식을 지향하는 나를 공격하지 않길 바라듯, 잡식을 하는 사람을 나도 미워하지 않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모두가 나처럼 채식이 체질에 맞을 순 없고, 몸도 입맛도 생활습관도 다르기 때문이다.


잊히지 않는 여름이 있다. 3년 전 어느 여름밤, 매일 새벽 기상과 업무에 지쳐 비가 내리는지도 모르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다시 출근을 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휴대폰을 보았을 땐, 간밤에 난리가 나있었다. 갑작스러운 큰 비로 인해 수도권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에 발이 묶였고, 사나운 비는 어떤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내가 잠에서 깨었을 땐 자비 없이 내렸던 비는 그새 사라졌고,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하고 선선한 날씨를 내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찰음식수업을 들으러 갔다. 그날 만난 스님은 얼마 전 내린 큰 비와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의 식생활과 기후위기에 최소한의 책임은 가져야 함을 설파했다. 배를 곯을 일 없이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시대에 우리는 먹어서 병드는 '식원병(食原病)'에 노출되어 있다. 식탁 앞에 놓인 음식의 근원을 모르는 만큼 우리 건강을 챙길 수 없을뿐더러, 내가 먹는 음식이 끼칠 영향도 알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채식을 지향하지만 종종 고기를 먹고 있고, 고기 먹는 사람들을 너그럽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타인의 밥상에 무엇이 차려져 있든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으려 애쓴다.(늘 어렵지만 말이다) 나는 남들보다 채식이 체질에 잘 맞고, 타고나게 식탐이 없음을 인정한다. 내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는 동물, 자연뿐 아니라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음을 깨닫고 포용하려 한다.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지내온 지난 몇 년간 건강하게 늙어가며 오래 살아야 하는 시대에 가장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