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욕피자의 근본, JOE's Pizza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 도착한 곳은 조스 피자였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해가 저물어, 가게 앞에 섰을 때는 이미 거리가 어둑어둑했다.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는 거리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피자집. 지금 돌이켜 보면 위생 상태가 썩 좋았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때의 나는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사람처럼 완전히 들떠 있었다. 문은 닫힐 새도 없이 열려 있었고, 입구에서 인도까지 길게 이어진 줄마저 장면의 일부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가게 앞에는 서서 먹고 갈 수 있는, 내 기준으로는 꽤 높은 스탠딩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었다. 그 주변은 이미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피자를 들고 커다랗게 웃으며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잠시 상상했다. 일을 마치고 바로 들른 걸까, 친구들과 놀러 나온 걸까, 아니면 데이트 중일까.
그곳에서 나는 작은 문화 충격을 받았다. 갓 내린 커피를 들고 걷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익숙한 풍경이지만, 갓 구운 피자를 한 손에 들고 거리에서 먹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뉴욕 사람들에게 피자는 커피처럼 손에 익은 음료이자, 우리가 떡볶이나 어묵을 들고 다니며 먹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길거리 음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안도 밖 못지않게 붐볐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자리에 앉아 먹는 사람들, 스탠딩 테이블에 기대 선 사람들까지, 작은 매장이 사람들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회전이 빨라서 자리는 금방금방 났고, 덕분에 나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 앉을 수 있었다. 주문을 마치고 피자를 받아 든 채 서 있다가 마침 빈자리가 보이자, 브루클린 브리지를 걸어오며 지친 다리가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곧장 의자에 몸을 눌러앉았다.
가족끼리 피자를 먹으러 온 사람들도 보였다. 인원이 많아서 자리를 맞추느라 꽤 애를 먹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다리가 너무 아픈 나머지, 혹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더라도 양보할 여유까지는 없었다.
뉴욕에 머무는 동안 다른 조스 피자 지점들도 가봤지만, 이곳(124 Fulton St, New York, Ny 10038)이 단연 가장 손님이 많고 ‘핫한’ 지점이었다. 손님이 많으니 피자도 쉴 새 없이 구워져 나왔다. 그 덕분에 나도 방금 나온 것처럼 따끈한 조각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바로 구운 피자가 아니라면 직원들이 다시 데워 주기도 했다.
나는 내 차례가 오기 훨씬 전부터, 아니 사실 매장에 들어서 줄을 선 순간부터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뉴욕의 피자는 대체로 조각 피자로 낱개 판매를 해서 여러 종류를 맛보기 좋았다. 같이 방문한 두 명의 친구는 한 조각씩만 시켰지만, 자칭 ‘먹짱’인 나는 두 가지 맛을 꼭 먹어봐야 했다. 네이버 블로그와 구글맵 리뷰를 샅샅이 검색한 끝에 마스카포네와 오리지널 치즈 피자를 고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나는 원래 새로운 곳에서 음식을 시킬 때 오리지널 메뉴를 하나는 꼭 고르는 편이다. 그 집의 ‘기본값’을 알고 싶어서다.
조스 피자의 한 조각은 한국에서 먹던 피자와는 다른 세계였다. 뉴욕 피자는 기본적으로 도우가 얇고 짭짤했다. 토핑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단출했다. 그런데 한입 베어 문 순간, 입 안에서 맛이 탁 하고 또렷하게 퍼졌다. 짠맛과 기름기, 도우의 약간 쫄깃한 식감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그렇게 먹다 보면 어느새 끝자락, 우리가 ‘꼬다리’라고 부르는 부분에 도착한다. 꼬다리는 조금 더 쫀득했고, 부풀어 오른 가장자리 부분은 바삭했다.
테이크아웃을 하면 포장용 박스 안에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를 두 장 겹쳐 담아 주고(두 조각 이상 주문했을 때), 가게에서 바로 먹고 가는 손님에겐 얇은 일회용 접시에 피자 조각을 올려 줬다. 대부분 사람들은 접시는 거의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자만 집어 들고 먹었다. 나는 손에 뭔가 묻는 게 싫어서 접시째 얼굴 가까이로 끌어올려 한입씩 베어 물었다.
오리지널 치즈 피자를 먹으며, ‘아, 뉴욕 사람들은 이런 맛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단번에 들었다. 내 입맛에는 완전히 취향 저격이었다. 한 조각에 약 6천 원 정도였으니 배가 차는 것만 놓고 보면 가성비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맛으로만 평가하자면 최고였다. 특히 마스카포네 피자는 다른 지점에는 없는 메뉴라, 그날 먹었던 한 조각이 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창문을 따라 길게 놓인 바 테이블에 몸을 조금 웅크리고 앉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크러쉬드 레드페퍼와 파마산 치즈를 아낌없이 뿌리고, 벽에 빼곡히 걸린 할리우드 배우들의 인증샷을 힐끔거리며 피자를 열심히 씹었다. 뉴욕에서의 첫 피자를 경험하던 순간. 때는 8월 28일. 그렇게 나는 ‘뉴욕 피자의 근본’이라고 불리는 조스 피자를 처음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