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를 위한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여준 공간의 힘

사용자의 이동과 시선을 고려한 몰입형 전시 경험

by UX의 조수

저는 쉬는 날이면 정처 없이 동네를 걷거나, 시간이 조금 더 여유로울 땐 다른 지역으로 훌쩍 떠나곤 합니다. 그런 여정 속에서 특히 즐기는 것은 그 지역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그곳이 가진 문화적 결을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두 곳의 박물관을 방문하며 느꼈던 인상적이면서도 아쉬웠던 감정들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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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종합박물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유물 전시 방식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종유석의 고유한 색감과 질감을 살리기보다는 초록색과 빨간색 조명을 강하게 비춰 오히려 유물에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전시 방식도 마치 창고를 연상케 했습니다. 여러 개의 유리장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 안에 수십 개의 유물이 촘촘하게 들어차 있어 관람객 입장에서는 각각의 유물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단순히 물건을 보관해 두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유물의 가치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반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 방식부터 관람객의 몰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유물 하나하나가 빛과 공간의 연출 속에서 조명되며 전시 배치 자체에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는 유물의 의미와 맥락을 자연스럽게 전달해 주었고 단순히 유물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자에게 하나의 ‘경험’으로 전시를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박물관을 방문할 때는 주로 유물 자체에 집중해 왔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 공간 전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걷고 머무는 모든 순간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고 그 안에서 유물과 공간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물 그 자체를 넘어 전시 공간을 통해 경험한 감정과 인상을 글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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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박물관으로 가는 길의 벽면에는 수많은 점을 활용해 문화재와 한국 전통 문양이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길이 아닌 '문화로 들어간다'는 감각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이 공간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걸음을 옮길수록 설렘이 차오르고 마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으로 들어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이동 공간이 점 하나하나가 모여 역사의 숨결과 전통의 이야기를 담아낸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조명을 따라 반짝이는 문양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주어, 현대적인 공간 속에서 전통을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2.문화의 경험.png

세계문화관을 돌아다니며 저는 박물관이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관람자가 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전시는 유물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문화가 살아 숨 쉬던 시대와 공간을 관람객이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깊이 고민한 결과처럼 느껴졌습니다. 단순한 전시가 아닌 '경험'을 디자인한 박물관의 방식에 감탄했고 그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문화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3. 공간의 반전.png

이전에는 그리스 신화와 생활 도구들에 대한 유물들이 흰 배경과 밝은 조명 속에서 전시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유물 하나하나가 마치 햇빛 아래 살아 숨 쉬는 듯 선명하게 드러났고 이는 고대 그리스의 지혜와 미의식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반면, 죽음과 장례문화를 다룬 공간에서는 벽면이 어두워지고 조명은 한층 절제되어 마치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는 듯한 깊은 몰입감을 주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조용한 무언가와 마주하려는 순간처럼 공간 전체가 숙연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유물의 의미를 더 깊게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이러한 전시 방식은 단순히 유물의 정보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의 감정과 인식을 유도하고 주제에 맞는 분위기를 공간 전체로 확장해 주는 설계된 경험이었습니다. 백지처럼 밝은 공간에서는 신화와 일상의 상상력을, 어두운 공간에서는 생과 죽음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리스인의 삶 전체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시 구성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4. 시청각자료.png

청각 자료의 배치도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단순히 작은 모니터 안에서 보여주는 정보 전달 방식이 아닌 벽면 전체에 영상을 투사하거나 지도 위에 실시간 자료를 덧입히는 방식은 공간 전체가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본 벽에 텍스트를 제공하는 방식과 다르게 다양한 방식을 제공하여 훨씬 더 직관적이면서도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구성 덕분에 관람자의 이해도와 몰입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시청각 자료는 전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공간에 스며들며 유물과 텍스트 사이를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공간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이야기 구조로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5. 휴식공간.png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공간은 박물관 내의 휴식 공간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휴게 공간이라 하면 단순히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 몇 개가 놓인 형태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곳은 달랐습니다. 화면을 각각의 공간의 전통적인 요소에 맞추어 현대 기술과 접목시켜 공간 전체가 여전히 ‘박물관의 연장선’ 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그 속에 흐르는 영상조차도 전시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잠시 쉬는 순간마저도 전시의 연속선상에 있도록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디테일은 단순히 ‘앉는 곳’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관람객이 잠시 머무르더라도 그 경험의 맥락이 끊기지 않도록 설계된 섬세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보며 디테일을 대하는 태도가 공간의 깊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해 주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전시 동선과 세심하게 설계된 공간들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하나의 '경험'으로서 박물관을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경험은 단지 유물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용자가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며 어느 지점에서 쉬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까지 전반적으로 고려된 사용자 경험의 좋은 예라고 느껴졌습니다. 특히 조명, 공간 구성, 인터랙티브한 시청각 자료, 휴식 공간까지 이 모든 요소가 박물관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점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설계할 때 사용자의 여정 전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UXUI 디자이너의 시선과 닮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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